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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지구인과 함께하는 자택 격리 생활 체험

고양이가 있는 거실 풍경

이런 시대는 처음일 것이다. 전 지구인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스스로를 집안에 격리해서 최소한의 외출만 하며 격리된 상태, 그러면서도 인터넷으로 모두가 연결되어 상황을 공유하는 시대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름대로 즐겁게, 어떤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잠식되어 누구보다 힘들게, 어떤 사람들은 이 상황을 일으킨 주범이라 믿는 무언가에게 화가 잔뜩 난 채로.

 

영아와 유아들은 그 어느 때보다 양육자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고, 어린이들은 친구들과 만나 놀 수 없어 답답하겠지만 나름대로 집 안에서의 생활을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 청소년, 성인들은 학교가 닫거나 개학이 미뤄지고 있어서 초조함과 자유로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돈을 벌어서 한 달 한 달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그저 이 범지구적 악몽이 큰 타격 없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라고, 그 지나가는 동안 어떻게든 버틸 수 있기만을 간절히 원하며 불안함 속에서 일상을 견뎌나가고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노동과 돈을 교환하지 않게 된 고령의 사람들은 본인과 가족의 건강을 염려하며 하루하루 각자 믿는 무언가에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겠지. 텅 빈 세계의 대도시들의 풍경을 찍어 올린 사진을 보며 각자 집안에서 온갖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나는 불안함을 오래 유지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럴 능력이 없다. 언젠가부터 그런 능력을 잃어버렸다. 불안한 마음이 들면 그로 인해 내 정신이 너무 힘들 것을 알기에 과부하 걸린 컴퓨터처럼 리소스를 많이 잡아먹는 프로세스를 멋대로 종료해 버린다. 현재 내 오감을 통해 인지된 상황만 보고서 미래를 짐작하는 시뮬레이션은 에너지가 많이 들고,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기 쉽지 않다. 따라서 꺼버린다. 말 그대로 현실 도피를 해버린다. 안 그러면 몸부터 아플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이 곳에서 몸이 아프면 의사를 만나기도 어렵고, 정말로 큰일이 된다.

 

사람들은 더이상 옷과 액세서리, 화장품을 사러 돌아다니지 않는다. 카페에도 가지 않고 외식도 하지 않는다. 슈퍼마켓과 약국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거리에 연 가게가 별로 없다. 슈퍼마켓에서 원래 무슨 물건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는 텅 빈 선반들이 낯설게 보인다. 화장실 휴지는 3주째 살 수가 없다. 파스타, 쌀, 밀가루와 같은 오래 보관이 가능한 곡물 제품들 또한 구경하기가 어렵다. 매주 한두 번씩 주유를 하는데, 지난 4주간 한 번도 자동차에 주유를 하지 않았다. 파리에 다녀온 후로 지출이라고는 사람과 고양이가 먹을 것을 사는 정도가 다였던 것 같다. 그리고 월말에 휴대폰, 인터넷, 온라인 구독 서비스(넷플릭스, 애플뮤직) 등의 비용이 빠져나갈 것이다. 사는데 뭐가 필요했던 것이고, 뭐가 내가 원해서 했던 것인지 배운 것 같다.

 

사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것도 제법 럭셔리한 상황이다. 여전히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출퇴근길에 겪는 온갖 위험을 그 어느 때보다 아프게 감수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자택 칩거 생활이 나처럼 쾌적하지 못한 사람들도 태반일 것이다. 회사가 당장 내일 망하지 않을 것을 아는 것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행운이라는 생각조차 든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전 지구인이 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는 때이다. 게다가 그 해결책은 아직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시기를 누구보다 힘들게 겪고 있는 동아시아 밖의 대륙에 살고 있는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연대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연구실에서 불철주야 애쓰는 이 바이러스 위기를 해결할 열쇠를 쥔 과학자들의 존재를 처음으로 상상해보고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내가 살기 위해 인류를 응원해야 할 때이다. 내가 아무리 인류애가 바닥을 치고 있더라도. 정말로 이상한, 기이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