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의 물리적 거리두기 4주째로 접어든다. 사실 일은 계속하고 있고, 사람들과 안부도 주고받고 있고, 트위터도 많이 하고 있으니까 사회적 거리는 오히려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산책을 했다. 간만에 밖에 나와보니 거리가 텅 비어 있어서 놀랐다. 시야에 열 명 이상 사람이 없는 것만 같았다. 나는 이 동네에서 나름대로 가장 북적이는 중심가에 살고 있는데도 그랬다. 간간히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보였다. 저 사람들은 마스크를 어떻게 구했을까? 나도 천 마스크를 하나 정도는 가지고 싶다. 지금은 괜찮지만 만약 기침이라도 나오면 너무 불안할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은 햇빛은 정말 따뜻하고 바람은 차가운 유럽의 봄날이었다. 꽃이 벌써 만개해서 어느정도 지고 있는 나무도 있었다. 이 아름다운 계절을 야외에서 누군가와 나누며 만끽할 수 없다니 아쉽다. 하지만 이 정도 아쉬움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을 만큼 나는 큰 어려움 없이 오늘까지 지내고 있다. 아마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재능이란 게 있다면 나는 그 재능이 많은 사람이다. 혼자 노는 것을 너무나 잘해서 전혀 심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씨엔엔에서 1년간 우주정거장에서 혼자 지낸 사람과 인터뷰를 하며 칩거생활의 노하우를 알려줬다. 대부분은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인데,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은 하고 있지 않아서 오늘부터 써볼까 한다. 물론 며칠이나 갈 지는 알 수 없다. 어제도 썼으니까 총 5일 예상해 본다.
오늘은 일 마치고 유투브에 올라온 영상을 이 것 저 것 보면서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운동도 했다. 어제 웨이트 트레이닝하다가 몸이 아직 정상이 아님을 깨닫고 오늘은 30분 스트레칭으로 운동을 대신했다. 유투브에서 노라 존스가 아주 편안한 차림으로 건즈 앤 로지스의 페이션트를 커버했다. 너무 감동적이라 짜르르한 느낌을 오랜만에 받았다. 노르망디가 내내 내 곁에 있었는데 유독 이 곡을 좋아하며 그릉그릉 소리를 계속 내며 편안하게 누워있었다. 사실 요를레이도 같이 침대에 있었는데 얘는 자고 있었다. ㅎㅎ
이 것을 보고 추천 영상으로 뜬 콜플 크리스 마틴의 인스타 라이브도 보았다. 몇 가지 신청곡을 받아서 즉석에서 피아노를 치며 불러주었다. 자기 노래도 다 까먹고 막 틀리고 하는 모습이 정말 재밌어서 삼십 분 정도가 금방 지나가 버렸다. 중간에 데이빗 보위의 Life on Mars를 커버했는데 그게 너무 아름다워서 보위의 원곡과 온갖 연도의 라이브 영상을 찾아 이 곡을 듣고 또 들었다. 어제 바이올로지스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졌듯이, 오늘은 이런 음악을 통해 이 시간을 견딜만하게 만들어 주고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사실 별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닌데 이렇게 일기로 쓰고 나니 무참히 흘려보낸 시간이 의미있게 느껴진다. 일기 쓰라는 조언은 괜찮은 조언인 것 같다. 오늘도 무사했으니, 내일 힘내서 내일도 무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