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아빠가 젊었을 때 매우 미남이었고, 여자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다는 자화자찬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빠는 그냥 아빠고, 매일 보는 사람이고, 나랑 비슷하게 둥근 얼굴을 가진 아저씨일 뿐이었으니까. 난 내 얼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아빠 얼굴도 잘생긴 얼굴이라고 인정이 되지 않았다. 난 오히려 우리처럼 둥글지 않은, 샤프한 얼굴과 날렵한 이목구비를 잘생긴 얼굴이라고 믿었다.
장국영을 처음 본 것은 더 예전일 수도 있지만 내가 그를 그로 인식하고 본 것은 중학생 때 친구들과 함께 한 친구의 집에서 몰래 패왕별희를 봤을 때이다. 이후로 그가 나오는 영화라면 (영웅본색, 아비정전,...) 일단 기회가 되는 대로 봤던 것 같다. 장국영을 보고 처음으로 아 둥근 얼굴도 잘생겼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사실 막 잘생긴 얼굴이라기보다는 되게 순수한 소년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아빠도 젊었을 때는 저런 풋풋함이 있었을 테니까, 둥근 얼굴에 큰 눈, 작고 꼭 다문 입술 등에서 그런 느낌이 났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내 시야는 좁고 취향의 폭도 좁을 수밖에 없었음을 깨닫게 해 준 사람이 장국영이었다.
4월 1일은 만우절이 아니고 장국영이 거짓말처럼 죽어버린 날이다. 워낙 동안이어서 나와 함께 오래오래 살아 줄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고 있었나 보다. 어리고, 그다지 대단한 팬도 아니었는데 너무나 충격이었다. 울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매 년 이때가 되면 잊혀지지 않는 감정이 되살아 난다. 난 아무래도 소나무 같은 취향 때문에 이 분의 얼굴보다는 목소리를 많이 좋아했다. 어딘가 힘겹게 내뱉는 듯한 음성인데 그게 되게 근사하게 들렸다. 오늘 아비정전을 다시 보고 나니, 폼 잡는 영화에 많이 나와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 그리고 장국영이 나온 영화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것은 역시 영웅본색이다. 거기서 연기한 캐릭터가 훨씬 내가 감정 이입하기 쉽게 그려졌다. 뭔가 동그란 얼굴 때문에 우리 식구 같은 동질감이 들어서 그런지 난 이 사람이 연기하는 캐릭터에는 마구 이입이 된다. 해피 투개더는 아직 못 봤다. 한동안 디브이디를 구해보려고 했는데 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국내 개봉이 금지되었던 작품이라고 하니 다른 경로로 찾기도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보겠지 하고 못 보고 있다.
하지만 왕가위의 영화중에서 제일 좋은 것은 역시 화양연화다. 유덕화가 역시 내가 생각하는 미남이다! 날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