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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모동숲 일주일

내가 편애하는 우리 섬 주민 케찹이

스위치 사고 나서 현생과 동숲 안에서 바쁘게 살았다. 회사 동료 J의 휴가 동안 그 동료가 하던 일을 떠맡아하며 내 일까지 하다가 완전 번아웃이 온 뒤로 동숲이 좋은 도피처가 되어 준 것 같다.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무릉도원을 뛰어다니며 나비를 잡고, 잉어를 낚고, 여러 종류의 과일과 꽃을 심고 가꾸는 삶. 참 행복했다.

 

현실에서는 코로나 크라이스 이후로 더 바빠진 회사 일, 마음에 안드는 미국 동료들과의 실랑이, 휴가 간 동료의 빈자리, 그 와중에 내 프로젝트를 언제까지고 뒤로 미룰 수 없어 꾸역꾸역 진행하기 위해 아무도 알아주지도 보상해 주지도 않는 오버타임까지 너무 바빴다. 그리고 외주와 집안일까지. 피곤하고 또 피곤했다. 열심히 사는데 손에 잡히는 보상은 미미해서 많이 지친다. 좀 쉬어가는 타이밍이 필요할 것 같아서 팀원 중 아무도 휴가를 안 쓴 이번 롱 위켄에 이틀 더 붙여서 총 5일을 쉬어보기로 했다. 딱히 생산적인 것은 하지 않고 그냥 하고 싶은데 바빠서 못했던 것들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놀면서 보내려고 한다.

 

동숲에 푹 빠졌던 것은 아마 현실에서 보장받지 못하는 노력의 보상을 게임에서는 훌륭한 그래픽과 사운드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잡초하나만 뽑아도 깨끗해진 바닥과 쏘옥!챡! 뽑혀서 주머니에 들어가는 소리가 충분한 뿌듯함을 준다. 몇 번 헛스윙을 한 뒤 잡은 나비를 뿌듯하게 자랑하는 캐릭터를 보면 특히 더 깊은 성취감이 몰려온다. 어마어마한 디테일로 무장한 이 작품은 최근의 고단했던 나에게 주는 세상의 선물 같다. 모래사장을 뛰어가는 소리,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며 철썩대는 소리는 오랫동안 그리워했고, 언제 다시 보러 갈 수 있을지 모르는 바다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기까지 한다.

 

공부를 마친지 1년 하고도 2개월이 흘렀다. 다시 쳇바퀴 도는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와서 더더욱 정체감을 느끼고 불안한 것 같다.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한 월급, 내추럴 익스퍼티스를 인정해 주는 동료들, 여전히 개선점이 많은 프로덕트,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 잡아가는 재택근무 등 사실 '꼭 바꿔야만 하는 것'은 현재로선 없는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늘 마음에 안 드는 것을 하나씩 바꿔나가는 것이 앞으로 나가는 것이라 여기며 살아왔기 때문에, 사람은 계속해서 앞으로 앞으로 노를 저어나가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뒤쳐진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피곤한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잭은 바보가 되니까, 하루 남은 사월은 좀 놀아야겠다. 퇴근 후 늘 지칠대로 지쳐 있어서 언젠가부터 읽다 멈춘 소설책도 다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