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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두달만에 외식

우리 노릉망디처럼 나도 오동통해져 가고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아직 레스토랑들이 완전히 오픈을 하지 못한다. 다음 주부터 테이블 사이 2m 간격 준수 및 방역을 한 가게는 영업을 재개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단 포장으로 주문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에 우리의 최애 레스토랑인 판다로 달려갔다. 욕심내서 메뉴 세 개를 포장하고 현기증 나는 마음으로 집으로 140킬로 밟고 왔다. 두 달 하고도 일주일 만에 처음 먹는 집에서 우리 둘 중 한 명이 요리하지 않은 음식이다. 무슨 맛인지 아는 메뉴들인데도 감격적으로 맛있었다. 덕분에 맥주도 세병이나 깠다. 지난 두 달간 이 날만을 기다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 주에 생일이라고 놀자고 하는 친구의 제안에는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는데, 역시 관계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구가 우선인가?

 

지금 발코니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무겁게 쏟아진다. 오후 내내 후끈하고 눅눅했는데 비가 오려고 그랬나 보다. 내 앞자리에는 노릉이 마주 앉아 있다. 노릉이랑 24시간 붙어 보내는 느낌이다. 너무 좋다. 난 도무지 자택 격리가 지겨워지지 않는다. 이제 셰프님의 음식을 포장해다 먹을 수 있는 옵션도 생겼으니 앞으로 더더욱 살만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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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아질 수 밖에 없는 시기여서 요즘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멍하니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회사 생활이 프리나 개인사업에 비해 내게 유독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게 더 이득인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가장 힘든 이유는 역시 회사란 어찌 되었던 남이 짜 둔 판에 내가 들어가서 부품으로써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서구의 자율적인 문화를 가진 회사여도 어느 정도 자아의 주체성을 억누르고 회사, 조직, 팀 안에서 형성된 문화와 관습을 눈치 있게 따르는 것이 요구된다. 운이 좋지 못해서 내가 가진 특성과 장점이 이 조직의 특성과 시너지를 일으키지 못한다면 내 가치가 낮게 평가받는다. 그래서 쓸데 없이 우울해지는 것 같다.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 사실상 날 평가할 역량과 통찰력이 부족한데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서 무력감에 빠진다. 근 반년 간 나를 괴롭히는 우울감과 무기력감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난 아무래도 얼른 다른 방법을 찾아서 회사 생활을 관둬야 할 것 같다. 다만 지금 동양계 외국인의 신분으로, 노동비자로 여기에 살고 있는 거니까 나에게는 대기업의 이름과 여기서 보장하는 안정된 수입원이 필요하다. 이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질보다는 양적 성장을 하고 싶은 조바심이 있지만 이 이유를 되새기며 참고 버티는 것도 공부가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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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의 삶은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에는 더더욱 고요해져서 좋다. 그렇다고 외롭거나 따분하지도 않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더 관계에 의존하는 인간이 아닌 모양이다. 아주 없으면 곤란하겠지만 소수의 사람과 깊은 신뢰를 기반으로 오래 오래 뜨문뜨문 잘 지내는 편이 가장 마음이 편한데, 그런 관계란 어차피 애써서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도 아니다. 스트레스받게 하고 마음 한편에 불편함을 안고서도 떨어내지 못했던 관계들이 이 시기를 계기로 정리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조금 든다.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근데 물론 나서서 정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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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숲 정말 재미있게 하고 있다. 누가 노동의 숲이라 부르던데 말 그대로다. 거의 현생만큼 노동력을 투입하고 있다. 아직 가진 것이 별로 없어서 화려하진 않지만 종류별로 다른 꽃을 심어 가꾼 화단이나 대나무숲 포토존 등을 바라보며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그래픽이 정말 예쁘고, 날씨나 시간의 변화 등을 구현한 완성도가 정밀하고 높아서 내가 가진 것만으로 꾸며도 화면은 아름답다. 안분지족의 삶을 여기서는 실천해 보고 싶은데, 사실은 하루에 수시간씩 노동력을 때려 부어 가며 벨(돈)을 벌고 있다. 한동안 낚시에 빠져 살며 방안을 걸어 다닐 때도 물고기 그림자가 환상처럼 보이는 중독증상을 겪다가 지금은 약간 지쳐서 다행히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점점 예뻐지는 동숲 속 마을과 집과는 별개로 내 방 내 발코니가 초라해 보이는 부작용은 있다. 가구 좀 예쁜 것으로 바꾸거나 사고 싶은데 이케아도 영업을 안 하고 온라인 숍들도 물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 같다. 현실에서 돈 쓰는 건 기다릴 수 있으니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