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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웨딩 그리고 소셜 딜레마

하이델베르크의 멋진 풍경

넷플릭스의 새로운 다큐멘터리 '더 소셜 딜레마'를 봤다. 유저의 관심을 계속 잡아두고, 더 많은 시간을 해당 플랫폼에서 보내기 위해 짜인 알고리즘과 그로 인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깊어가는 사회의 분극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였다. 사이언스 픽션처럼 만든 재연극과 각종 소셜미디어 플랫폼 제공 회사를 위해 일하거나 일했던 사람들, 그리고 몇몇 전문가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재미있고 자극적이고 좋은 영화였다. 나 역시도 이미 중학교에 가서부터 피씨통신을 통해 동호회 활동을 했고,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고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다. 다행스럽게도 스마트폰이 나오고, 내가 어딜 가든 인터넷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은 성인이 되어 겪었지만 지금 내 상태를 보면 어려서 스마트폰을 접한 아이에 비해 뭐가 나은지 모를 만큼 스마트폰을 의지해서 살고 있다. 주로 들여다보는 소셜미디어는 트위터여서 다행히도 외모나 인기, 화려한 라이프스타일 같은 것에 대한 노출은 덜하다. 그래도 시간을 이렇게까지 쓸 필요는 없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그 외에는 각종 메신저의 푸쉬 알림, 카메라 기능, 시계와 알람 기능, 팟캐스트나 유투브 같은 오락매체를 위해 스마트폰을 하루 종일 이용한다. 전화는 아마도 이 단말기가 가진 기능 중에 가장 덜 쓰는 기능이라 여겨질 정도다.

 

다큐멘터리에서 말한 딜레마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요즘 소셜 딜레마를 느끼고 있다. 말 그대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유기적 관계에 대해서다. 바이러스 판데미를 겪으며 만나도 마음이 놓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꼈다. 그리고 내 행동에 대한 결과도 엊그제 친구의 결혼식을 통해 확인했다. 엊그제는 이 곳에서 4년간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 커플의 결혼식이었다. 대학원 생활 내내 같이 조별 활동을 했고, 이후에도 커플 셋이 종종 여행도 함께 가고 저녁 모임도 많이 가졌다. 불가리아, 인도, 브라질, 한국 국적을 가진 친구들이 다른 점도 참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손절하지 않고 지내온 것을 보면 분명 잘 맞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판데미 이후 상황이 좀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이 사태의 심각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한 편이 다른 한 편을 판단하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한국 정부의 공격적인 방역 노력을 보며 시민으로서 최대한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고, 개인의 재미는 좀 포기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5명 이상 모임 금지 같은 지침이 있는 동안 이들의 제안을 모두 거절했었다. 생일파티는 거절하기가 어려워서 갔었다. 그때도 죄책감이 많이 들었다. 이런 나를 그들은 아마도 쓸데없이 오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반면 내 입장에서는 그들이 이기적으로 느껴진다. 병상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와중에 생일파티가 왜 그리 중한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커뮤니티의 생명과 안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은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같이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정말 특별한 날은 맞다. 이 친구들이 20대 초반일 때부터 후반이 되어 결혼 할 때까지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고, 둘이 싸울 때마다 같이 술 마셔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11시간 이상 이어진 결혼식에 30명 미만의 타인과 함께 참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피어 프레셔를 무시할 수는 없었고, 친구들에게 상처를 줄 용기가 없었다. 대학원 동기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이 커플을 이 기회에 등질 경우 모두와 등지게 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기도 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는데, 외국 생활에 인맥은 정말 중요하다. 외국인으로서 독일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고충을 함께 나누는 친구들을 이렇게 잃어버리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최소한의 인원만 모여 진행하는 스몰웨딩이고, 독일 정부에서도 이러한 모임에 대해서는 크게 제재를 가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크게 마음을 먹고 다녀왔다. 막상 오랜만에 친구들, 동기들 얼굴을 보니 너무 반가웠고, 우리만 부담을 가지고 만난 것은 아님을 약간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밴드에 확진자가 있어서 자가격리 중이라 참석하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파티를 주관한 또다른 베프 친구들이 술에 좀 취해서 우리에게 서운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자기들이 뭘 잘못했냐고 물어서 마음이 아팠다. 사실 아무도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오버하는 사람으로 비칠까 봐 불편해진 것이다. 나와는 스탠다드가 다른 그들이 어디선가 바이러스를 얻어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도 있다. 그들에겐 우리가 차갑고 냉정하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것까지 감수하면서도 친구로 남을 수 있는 사람들과만 친구 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오늘의 나는 2019년까지의 나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잣대를 가지게 되었고, 더 이상 안전과 건강에 대해 다른 태도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편해졌다. 이 것이 생각보다 굉장히 크고 깊은 틈을 만들어 놓았다. 어떻게 사과하고 위로하면 좋을지 몰랐다. 파티 분위기여서 이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마도 조만간 허심탄회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벼운 저녁 자리 같은 것을 내가 마련해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소규모지만 파티 후 격리를 통해 음성이 나올 거란 확신을 가지고 한국에 가고 싶어서 만나기 싫기도 하다. 이런 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막막하다. 그래도 그간의 정이 있으니 시도는 열심히 해 보려고 한다. 같이 술 마시고 바보짓할 때도 있었지만 나는 이런 부분에서 굉장히 지루한 사람이란 걸 그들이 받아들여주고 존중해줬으면 좋겠다.

 

사실 거리를 잘 유지하며 그로 인해 더 마음으로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갖는 친구들도 있다. 나보다 더 바이러스에 대해 심각하게 인지하고 부모님도 잘 만나지 않는 회사 동료들, 친구 세바스찬과 록시 같은 존재가 있어 고맙다. 어찌보면 이 차이는 비극 같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약간 운명처럼 헤어져야만 하는 그런 류의 비극. 아무튼 이제는 이해 못할 거라 단정하지 말고 표현을 더 하고, 노력은 해 볼 것이다. 이 것이 내가 그들은 존중하는 방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