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나게 젤다 야생의 숨결을 플레이하고 있다. 아직 매우 초반이기 때문에 링크도 아주 약하고 아이템도 별로 없고, 또 쓰리디 게임을 오랜만에 플레이했더니 어찌나 어지러운지 몇 중고를 겪고 있는지 모른다. 재미는 있지만 괴로운 시기이다. 하지만 어떤 게임이든지 이 초심자 때의 막막함을 넘어서야 진짜 숨 막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으므로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 다행히 게임이 정말 놀라운 완성도에 자유도를 가지고 있어서 풍경을 감상하거나 단순히 스토리를 따라가며 만나는 장소와 캐릭터의 디자인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초심자가 겪는 막막함을 겪고 있자니 가끔씩 게임에서 현실로 도피하고 싶어진다. 진짜 웃긴 현상이 아닌가? 보통은 현실이 따분하거나 답답해서 게임이 주는 즉각적 보상의 감각으로 도피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는 방향인데. 아무튼 여러모로 이런 게임은 처음 해본다. 젤다 시리즈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매력도 가지고 있는 게임이어서 탈주하고 싶어도 탈주할 수가 없다.
게임보다 현실이 더 쉽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찌보면 이 게임이 주는 또 다른 측면의 보상 같기도 하다. 현실의 나는 지금 내가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 속 링크처럼 초심자는 아닌 덕분이다. 나라는 캐릭터를 이 만큼 키워놓아서 회사에서 괴상한 퀘스트를 받아도 그럭저럭 처리해 나갈 수 있고,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는 덕분에 매 달 각종 영수증이 청구하는 대금을 내며 먹고 살아갈 수 있다. 젤다보다 현실이 자유도가 더 높은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이 삶의 몇 퍼센트나 얼마만큼의 성취도를 가지고 플레이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인 것은 다름이 없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막막한 상태에서 시커 스톤의 가이드와 보조도 없이 의무교육과 대학교육을 받은 것을 담보로 사회에 나와 고군분투하며 20대를 지나 30대에 안착하였다. 앞자리가 3으로 바뀐 지 몇 해 지나서야 이제 내가 30대라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어릴 때 상상했던 완전한 어른의 모습과 현재의 나의 모습에 살짝 괴리는 있지만, 이제 방한복을 포함한 방어구, 랩탑이나 아이패드 같은 무기, 이동을 원활하게 해주는 자동차 정도는 스스로 벌어 모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일을 오래 하고 중간중간 필요한 교육도 추가로 받아왔기 때문에 내 분야에서 만큼은 다른 초심자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수준만큼의 지식도 갖췄다고 생각한다. 늘 무기처럼 다루는 어도브 프로그램 등의 컨트롤은 아주 화려하다고 자부할 수도 있다. 링크가 현재의 나만큼만 뭔가를 갖추었다면 라이넬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내가 키우고 있는 링크는 라이넬한테 여덟 번 정도 맞아 죽었고 피해서 갈 방법을 고민 중이다.
작년까지는 매년 뭔가 하나씩은 업적을 세워가며 참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올 해는 처음으로, 또는 오랜만에 별생각 없이 남는 시간에 책을 읽거나 시리즈를 보거나 게임을 하며 보내고 있다. 어떤 교육과정에도 등록하지 않았고, 언어도 배우고 있지 않으며, 회사일을 마친 후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고만 있다. 자기 계발을 놓은 상태여서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고 있기는 하다. 그래서 한동안 안 받던 외주 일을 받아하며 약간의 용돈을 더 벌기도 했었다. 사실 연말에는 영주권을 따야 하는데 그에 필요한 어학점수를 만들기 위해 독일어 공부를 하고 시험도 봐야 한다. 그러니 올 해도 아무런 '업적' 없이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래도 될까 싶은 불안함과 이래서 너무 좋다는 생각이 계속 동시에 떠오른다. 내가 나를 너무 막 부리며 사는 건지, 아니면 너무 야망이 없고 게으름이 심한 건지 어떻게 판별하기가 어렵다. 지나 보면 알게 될 것이긴 한데,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지, 이 시간을 좀 더 알차게 살아냈으면 더 좋지 않았을지 아쉬우면 어떻게 하지 하는 마음이 자꾸 날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 이런 측면에서 역시 게임보다는 현실이 더 어렵다. 한가지 확실하게 아는 것은 난 아직 더 올릴 레벨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니 지금은 잠깐 쉬어가는 미니 퀘스트들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미니 퀘스트에서 재미있는 기술도 배우고, 체력도 올리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도 많이 충전해서 다시 다음 단계를 향해 뛸 지구력과 체력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재미있겠다. 어렵고 캄캄하고 답답한 와중에 날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은 역시 재미다. 재미가 있어야 해. 고로 재밌는 젤다에 당분간 내 시간을 많이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