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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행복감과 성취감은 동시에 즐길 수 없는지도 몰라

노르망디님

오랜만에 주말에 남편이 와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딱히 같이 한 것은 없었다. 외식을 두 번 했고, 한국마트에서 같이 장을 봤다. 왕복 두시간 거리의 목적지에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차 안에서 수다를 떨기는 했다. 그 외의 시간에는 각자 집에서 할 일을 하거나 놀거나 했다. 나는 게임을 좀 하고 스트레칭을 한 것 빼고는 평소대로 가끔씩 유투브와 트위터를 체크하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알바로 받은 일도 조금 하고 공부도 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전 늦게까지 침대에서 뒹굴대는 시간이 좋았던 것 같다. 같이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좋았다. 평소에는 내가 대충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 뭔가 해먹지만, 혼자 먹는 식사는 아무리 맛있어봐야 한계가 있다. 비빔소면을 만들고 냉동 김말이를 구워서 쥐오디 노래를 틀어놓고 같이 아점을 먹었다. 이게 내가 혼자 만들어 먹는 소피스티케이틱한 라자냐보다 맛있게 느껴졌다. 지금은 일요일 저녁 6시 30분이고 주말동안 그 어떤 생산적인 일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약간의 죄책감은 있지만 행복했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문득 행복감과 성취감은 공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동안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생각해 봐도 그렇고, 좀 더 길게 시간의 틀을 잡아봐도 그렇다. 대게 뭔가를 성취해야 하고 그 결과가 뿌듯한 때는 과정이 재미 없고 덜 행복하다. 그 결과물이 필요해서 억지로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후에 옆집 사는 친구로부터 이사를 나갈 것이란 소식을 들었고 매우 심난해졌다. 쿨하고, 친절하고, 고양이도 좋아하고, 휴가 때 서로의 고양이를 챙겨주는 사이였어서 더더욱 아쉽다. 제발 다음 이사 들어오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고양이를 좋아했으면, 이왕이면 고양이를 키웠으면 좋겠다. 내가 욕심이 많다. 안다.

 

그게 아니더라도 올 해는 뭔가 변화의 징조가 많이 보이는 때이다. 계속 이직을 하고싶다는 마음이 든다.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도 있고, 사실 나는 먼 미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데, 근미래에 더이상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직은 내가 필요한 때라는 직감과, 이제 친해진 동료들, 그리고 2년은 채우고 이직을 하는 편이 경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기준이 나를 잡고 있다. 그래서 매우 게으름을 부리고 있었지만 이제는 포트폴리오도 좀 업데이트하고 언제 올 지 모를 기회를 잡기 위해 준비를 해놓는 멋진 사람이고 싶다. 그게 아니더라도 올 10월쯤에는 독일어 B1점수를 따서 영주권을 신청 할 수 있다. 잘은 모르지만 진짜 이민자 반열에 드는 단계이므로 꼭 이뤄보고 싶다. 그리고 가장 마음이 무거운 부분은, 엄마가 많이 안좋으시다. 어제 영상 통화로 잠시 얼굴을 뵈었는데 너무 심하게 마르셨다. 마음이 너무 무겁고 아프다. 언제라도 한국행 비행기를 살 수 있게 비상금을 마련해 두었다.

 

차타고 프랑크푸르트에 가면서 남편이 나보고 꿈이 뭐냐고 물었다. 나의 꿈은 대게 아주 단기적이고 너무 성취 가능한 것이거나 아니면 막연한 이미지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사업을 해야 할 때가 오면 관광지에서 하고 싶다고 했다. 휴양을 즐기러 온 느긋한 사람들에게 맛있고 진실된 맥주랑 음식을 팔고 싶다. 그리고 기왕이면 바닷가에 살면서 매일 바다를 보고 싶다. 그렇게 되면 설사 큰 돈은 못 벌더라도, 큰 돈을 버는 것만이 이 사업의 목적은 아니게 되기 때문에, 행복한 삶과 실패하지 않는 삶(성공까지 바라면 너무 욕심이 과한 것 같다)을 동시에 가져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게 너무 나이브한 계획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그동안 괴로움을 견디며 숫자와 돈을 공부한게 아니었을까 싶다는 깨달음도 들었다.

 

뭐가 되었든 올 해 오게 될 변화가 나는 너무 무섭다. 내가 이 것들을 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체력이 달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