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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독일에서의 식생활?

직장인 자취생의 반상

아무래도 세계에서 가장 편리하다고 할 수도 있는 도시 서울과 서울의 근교에서만 살다가, 유럽에서도 좀 불편하게 사는 편인 독일의, 그 마저도 도시에서 한참 떨어져 포도팥과 아스파라거스 밭으로 둘러쌓인 시골 마을에서 사는 것은 의식주 포함해서 모든 것이 큰 도전이다. 게다가 독일은 식문화가 크게 발전한 편은 아니어서 재독 한국 사람들의 주된 안주거리는 역시 '독일 음식 맛없어'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취향마다 다르고, 얼마나 음식을 잘 하는 곳에서 독일음식을 먹어봤냐 하는 등 많은 변수를 고려하고라도 독일음식이 세계에서 맛있는 음식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건 나도 백퍼센트 공감하지만, 맛있는 독일의 전형적인 음식들이 분명 있다. 어차피 지구촌 맛집을 담당하고 있는 이태리, 중국, 터키, 멕시코 같은 곳들과 비교하고 싶지는 않고 그럴 경험치도 없다. 한국음식이랑 비교를 하자면, 그냥 나같은 특별히 부자도 아니고 요식업에 종사하지도 않는 사람이 느끼기에 독일음식은 범위가 되게 적다. 그런데 깊이를 파고들면 제대로 만든 부어스트(소시지), 슁켄(햄), 치즈, 빵, 맥주, 와인, 제철음식, 바이에른식 요리 등을 접하기가 비교적 어렵지 않다. 동네에 찾아보기만 하면 역사가 기본 백년은 넘는 대를 이어 이러한 식가공품을 만드는 곳이 있고, 거기서 사면 나름대로 자신들의 맛을 구축해서 발전시켜 온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나랑 안 맞을 수도 있다. 근데 그렇다고 이걸 맛 없다고 할 수 있냐 하면... 그렇게 폄하하고 싶지는 않은 퀄리티다. 이러한 것은 한국에서 쉽게 하기 어려운 경험이기는 하다. 집집마다 내려오는 김치나 장의 맛은 분명 있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나의 앞 세대부터 이미 좀 애매해지지 않았나? 김치는 아직도 담궈먹는 집이 많지만 주거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집에서 장을 담궈먹는 럭셔리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고해서 그 마을에서 특산품을 이용해 장을 담궈 파는 가게가 있나? 내가 떠올리기에는 없다. 아직 맥을 유지하고 있는 시장에 가면 직접 짜는 기름집이나 떡을 만들어 파는 방앗간 등이 그나마 전통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독일은 뭔가 이런 부분에서 묘하게 부지런하게 기계화나 산업화를 우리나라 보다는 훨씬 잘 해놨다. 따라서 집에서 바쁜 현대인이 차마 직접 하기 어려운 제빵, 육가공 등은 마을마다 자랑하는 베커라이나 메쯔거라이에서 계속 연구하고 시장의 요구에 맞게 변화하며 만들어 팔고 있으므로 정말 잘한다. 잘하는 메쯔거라이에서 만든 콬슁켄이랑 슈퍼마켓에서 파는 패키지의 그 것을 한입씩 입에 넣고 씹어보면 그 차이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아무튼 무턱대고 수준이 낮다고 말하기엔 좀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 살면 살수록 좋은것들을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기도 하니까.

 

그런데 왜 한국음식이 독일 음식보다 맛있다고 느껴지냐면, 일단 당연히 내가 한국사람이어서 그렇다. 그리고 음식의 종류가 많고 따라서 재료 다루는 법과 그리고 조리 자체에 가하는 정성은 서양음식에 비할 수 없을만큼 다양한 것 같다. 소스의 종류도 많다. 기본적으로 맛이 되게 풍부한 장이 여러개 있고, 그걸 온갖 서양의 특산품과 섞은 소스가 또 있고, 주변에 또 맛국들이 많다보니 여기저기에서 배운 것들이 짬뽕되어 있는 것 같다. 사실 재료와 조리법 소스 이 세가지의 콤비네이션으로 음식이 만들어진다고 좀 많이 단순화 했을 때, 한국음식은 그런면에서 말도 안되게 많은 콤비네이션이 가능하고 그래서 음식이 다양하고 저마다의 맛의 장점이 있으므로 포괄적으로 맛있다는 이미지를 준다. 게다가 그런 음식을 밥상에 쫙 깔아놓고 여러 반찬과 쌀밥과 국을 같이 먹잖아. 이 중에 자기 입맛에 맞는게 당연히 하나라도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전반적인 식사 경험이 좋은 것 같다. 다만 이걸 직접 해먹기에는 너무나 많은 고생이 필요한데, 요즘엔 반찬가게 등 우리나라도 식문화의 아웃소싱산업(?)이 점점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나 전에 살던 정자동에도 유명한 반찬가게가 있었고, 오후에 가면 다 팔려서 살게 별로 없을만큼 장사가 잘 되었다. 아파트에 서는 장에는 튀김 전문점도 있었다. 그런데서 눈앞에서 바로 만들어 튀겨주는 안심까스 같은걸 사먹는 편이 경제적으로도 맛적으로도 좋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요구하는걸 장사하시는 분이 듣고 계속 발전하는 것을 보는 것도 좋았다. 그 어떤 대기업에서 파는 것보다 동네에서 사먹는 것이 신선하고 맛이 좋았다. 장이나 김치같은 것도 점점 그런 곳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획일화보다는 다양성을 추구하고 선택지가 넓어지는 편이 맛의 세계에서는 단연코 좋은 것 같으니까.

 

그래서 나는 독일에서 뭘 먹고 사냐면, 50:50으로 독일사람들이 먹는 서양음식과 아시아음식을 먹고 있다. 나는 95%정도를 장을 봐서 집에서 요리해서 먹으니까 내가 직접 요리하는 독일식 음식도 많은 편이다. 뭐 서양음식은 사실 손쉽고 빠르고 맛있는 파스타가 아닌이상은 거의 요리를 한다고 볼 수는 없는 수준이다. 빵을 잘라서 (요즘에는 빵을 굽기도 하지만) 토스터기에 굽고 위에 얹을 것을 잘라 준비만 하는 식이다. 채식을 시작하기 전에는 장터에서 사온 슁켄, 플라이쉬부어스트, 고다나 에멘탈 치즈 등과 먹었다. 요즘에는 아보카도를 간을 해서 으깬다음 얹어먹거나, 바나나를 으깨서 블루베리, 사과 같은 다른 과일도 함께 얹어 먹기도 한다. 이런 신선한 식료품과 과일을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것은 독일의 절대적인 장점 중에 하나다. 빵도 좋아해서 자주 먹는데, 빵값도 진짜 싸다. 직접 구우면 더 싸다. (한국에서는 제빵이나 제과에 도전하지 않은 이유가 재료비가 꽤 들었었다.) 파스타 같은 것은 정말 무궁무진한 레시피가 있고, 준비시간이 30분이 넘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정말 자주 먹는다. 그래서 한식이나 아시아식은 보통 좀 특별한 것을 먹고 싶을 때 주로 먹는다. 밥을 한 번 하면 4-5인분 해놓으니까 그 것을 소진하는 동안 이 곳의 채소를 이용해서 한국식으로 소금과 다진마늘 맛으로 볶거나 해서 반찬으로 먹는다. 독일에서 해먹는 것과 한국에서 주로 외식하거나 가끔 해먹던 것의 전반적인 퀄리티를 비교하면, 편리성 대비 맛은 한국이 압승이지만 신선도와 가격을 놓고 보면 또 잘 모르겠다. 여기에서는 유기농 제품도 큰 부담없이 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맛보다 건강을 더 생각하게 된 것은 맞다. 사실 몸에 안좋고 맛있는 것을 여기선 보기 어렵다. (몸에 안좋고 맛도 없는건 많다.) 이건 독일 탓도 있지만 내가 바뀐 탓도 있다. 그래서 억울한 점은 하나도 없다. 만일 독일을 떠나게 된다면 그리울 것은 참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