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누군가 언급했기 때문에 깨달은 바가 있다. 나에게는 영어 자아가 있다. 독일어 자아는 아직 없다. 그 정도로 실력이 안되기 때문에. 영어 자아도 영어를 생활 속에 쓰면서 살게 되면서 생겼다. 그런 관점이라면 영어 자아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기에 아직 나는 수사나 미사여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로 영어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다. 내 생각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걸 언어로 최대한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중요한 툴 중 하나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사실 하나만 부족한 건 아니다.)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서 내가 생활속에 하는 노력 중에 하나는 인터뷰 팟캐스트를 듣는 것이다. 인터뷰의 경우는 대답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대부분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한 주제이고, 따라서 그 사람이 나름대로 그 내용을 언어적으로 잘 표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세팅이기 때문에 좋아한다. 아무 말이나 듣는 것은 이제 별로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외우거나 준비한 대사가 아니라 어느 정도 정직하게 임기응변적으로 나오는 표현을 많이 들을 수 있다. 그때 눈치채기 쉬운 것이 그 사람이 특정 감정을 표현하는 수사나 미사여구이다. Incredible, enormous, tremendous, absolutely, bloody, such a... 작은 뉘앙스 차이들을 이제 알아들을 수는 있다. 비슷해 보였던 것들의 차이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다만 그걸 아직 내 입을 통해 적시적소에 구사 할 수가 없다.
즐겨듣는 팟캐스트는 코미디언들이 나와 이야기하는 미국의 팟캐스트이다. 모든 코미디언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본인이 겪어온 삶에 대해 수사하며 무대에 서는 것을 업으로 삼고, 그게 실제로 괜찮은 수준이 되기까지 본인을 방해하거나 밀어붙인 주변 묘사를 듣는 것이 재미있다. 시대는 많이 변했고, 많은 이른바 '소수'들이 무대에서 성공하고, 이름을 알리고 있다. 아시안, 게이, 여성, ... 이 사람들이 농담을 섞어 던지는 메시지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시대가 되었음은 벅찬 부분이다. 그런데 이들이 묘사하는 스스로가 계속해서 추구하는 바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be my authentic self이다. 딱 와닿는 직역은 없어서 대충 내가 느낀대로 의역을 하자면,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나의 내면의 욕구와 감정에 진실되게 반응하는 나' 정도로 바꿔 말할 수 있겠다.
그런 나는 누구일까. 한국어 자아의 나는 그런 사람일까. 영어 자아의 나는 그런 사람일까. 내가 느끼기에 영어 자아의 나는 보다 더 거침없고, 더 직설적이며(어떻게 더? 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로 더), 더 뻔뻔하다. 영어로 살아오면서 필요한 덕목이라 생각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 문화와는 많이 다르고, 한국에서도 잘 못했던걸 외국어로 잘 할 수 있을리가 없으니 그냥 차분하게 내 실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 때문인 듯 하다. 차분함 부분은 아직도 많이 고쳐써야 한다. 흥분하면 머릿 속 언어모드가 급 한국어로 바뀌어서 충돌이 자꾸 생겨.
최근에 고민하는 것 중에 누군가가 나에게 대화를 요청 할 때, 그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편이 나을지, 아니면 듣기 싫을게 뻔하지만 내가 꼭 해야 할 것만 같은 말을 하는게 나을지이다. 보통 후자를 꼰대라고 부른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말을 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 싶다. 그 사람에게 구지 그런 듣기좋게 포장된 말을 진실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과의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인데, 진실되지 못함을 기반으로 망가지지 않은 관계가 얼마나 의미있는지를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매사에 진심이고 싶다. 정말로. 그런데 그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아야 한다면, 한두번으로 끝나고 사과와 진심의 확인으로 이해받는 관계가 아니라면, 그 관계가 장기적으로 서로에게 좋을리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모두가 날 좋아할 필요가 없다는 것쯤은 아는 서른서넛(국제나이, 핸국나이..)이 되었다. 그걸 깨닫고 나니까 모두가 날 싫어할지도 모르겠네, 라는 우울한 시즌에 맞게 이러한 의심이 든다. 아무튼 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친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마음 정리를 좀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든다. 옳은지 틀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요즘 세상도 나를 힘들게 하고, 개인적인 사정도 많아서 혼자서 버텨 나가는 것이 쉽지가 않다. 맥빠지고 기운빠지는 나날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계기를 통해 고요하게 내면을 들여다 보려 하는 노력도 조금 하게 되니까 완전히 마이너스는 아니다. 아무튼 사는게 빡세다. 뿌듯하고 벅찬 기쁨의 감정을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