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드니로가 아이리시맨에서 (예전에 인턴에서도 그렇고) 너무나 멋진 파자마 패션쇼를 선보여서 한동안 파자마 검색에 푹 빠져 있었다. 파자마도 파자마지만 그 위에 꼭 걸치고 허리끈도 야무지게 맨 로브들이 하나같이 너무 멋졌다. 패턴도 되게 고급스럽고, 소재도 아마도 실크거나 실크가 혼방된 되게 좋은 것처럼 보였다. 겨울철에 파자마를 입고 그 위에 따뜻한 로브를 걸치고서 고급진 1인용 쇼파에 앉아서 책이나 신문을 읽는 모습이 나에겐 어쩐지 성공의 이미지로 그려질 만큼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몇 주간 잠옷 위에 보온을 위해 입을 용도로 로브를 하나 사고 싶었는데 어제 쇼핑 갔다가 엄청 세일을 하고 있는 초 보들보들한 극세사 로브를 발견해서 쾌재를 부르며 샀다. 내가 바라던 고급스러운 타탄체크의 플란넬같은 아무튼 비싼 소재가 아닌 폴리에스테르 보들보들이지만 어쨌든 15유로의 대행복. 꿈이 이루어진 느낌이다! 어제 저녁부터 이걸 걸치고 계속 스스로를 쓰다듬게 된다. 마치 요를을 쓰다듬는 느낌이다. 요를녀석 그러고보니 이런 부드러움을 평생 몸에 지니고 살고 있었구나.
나는 잘 때 수면잠옷을 입는데, 그게 버릇이 되다보니 여름에도 잠 잘 때만 입는 잠옷이 따로 있다. 그래서 내 옷의 큰 카테고리는 외출복, 운동복(집안일 등 잠자기 전 집에서 입음), 잠옷으로 이루어진다. 잠옷을 입었을 때 '아 이젠 푹 쉬기만 하면 된다' 하는 대단히 기분좋은 느낌이 있어서 전과 달리 아무 헌 옷이나 입는 것보다는 제대로 된 잠옷을 입고 싶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면서 아무래도 라운지 웨어나 잠옷에 관심이 많이 가기는 한다. 근데 딱히 집안에서 시크하게 있을 필요까지는 모르겠기 때문에 구지 해당 목적으로 나온 제품을 산 적은 별로 없다. 외출 후 바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안일, 저녁식사, 그리고 운동을 한 후 샤워를 마치고 나서 목욕가운을 걸치고 옷방으로 가서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이 때부터 본격적인 쉬는 시간. 집이 추운 편이고 난방을 많이 하기 싫어서(돈 문제도 있고, 공기가 탁해져서 싫다. 온돌 그리워 ㅠㅠ) 좀 춥게 지내는지라 겨울철엔 극세사 잠옷이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총 세벌의 겨울철 잠옷을 가지고 있다. 두 벌은 극세사고, 한 벌은 무지제품으로 얇은 순면이 여러 겹으로 눌려 만들어지고 어깨부분이 한 겹 더 덧대어 아주 잘 만들어진 따뜻한 동절기 잠옷이다. 가벼운 아토피이자 심한 건성피부인지라 가끔 피부가 안좋을 때는 순면 잠옷이 큰 도움이 된다. 5-6년째 입고 있어서 좀 헤졌는데 다음에도 같은 제품이 있다면 사고 싶을만큼 좋다. 근데 무지 제품은 소재랑 바느질은 참 좋은데, 늘 너무 짧아. 특히 바지가 짧다. 하절기에는 한 벌로 입는 잠옷은 따로 없다. 언젠가 기회와 인연이 닿으면 한 벌쯤 장만하고 싶기는 해. 그런데 잘 때 땀을 흘리는 여름엔 냉장고 바지랑 헐렁한 순면티가 너무 최고라서 한 벌짜리를 구지 사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잠옷은 자기 전후부터 시작해서 잘 때 입으니까 하루 중 가장 길게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이다. 따라서 반드시 마음에 드는 녀석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쇼핑을 자주 하거나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요즘에는 새롭게 필요한 것은 더이상 없고, 내 일상 시간표에서 긴 시간을 차지하고 있고, 계속 반복되는 행위에 쓰이는 물건을 하나씩 좋은 것으로 바꿔 나가는 즐거움이 있다. 좋은 물건들은 때로는 같은 목적을 이루어 주는 싼 물건보다 이해가 안될만큼 높은 가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싼건 거의 다 써봤으니까 비싼 것과 경험의 차이가 뭔지 비교하며 오래오래 두고두고 쓰는 재미가 또 있다. 슬립웨어에 로브를 추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싼 것으로 일단 경험의 문을 열었으니 나중에 비싼 것으로 교체 할 시점에 내가 어떤걸 원하고 좋아하는지 더 정확히 알고 살 수 있겠지. 근데 지금으로썬 극세사, 보들보들, 포근포근, 너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