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12월엔 늘 기말고사 때문에 정신없다가 방학 후 한국에 가서 연말을 보냈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낀 적은 또 처음이다. 하루 종일 캐럴의 멜로디를 흥얼대는 동료들(한 구절만... 으으), 묘하게 들뜬 얼굴로 인사하는 지인들, 그리고 각종 '올해의 마무리' 스카잎미팅들. 나도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오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오급 초콜렛 한 박스랑 자그마한 향초 하나씩을 제일 좋아하는 동료들에게 선물했다. 작은 손편지도 썼다. 다들 생각도 못했는데 감동했다고 꼬옥 안아주며 막 눈물까지 글썽댔어. 그럴 것 까지야. 흠흠. 어쨌든 다들 기뻐해 줘서 나도 즐거웠다. 오늘은 올해의 마무리 팀 회의와 부서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일단 넘나 다국적 기업이니 모든 회의는 스카잎콜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오늘 처음으로 화상 채팅으로 팀 회의를 해서 미국에 있는 동료들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팀원당 각기 다른 10가지 스피드 퀴즈를 매니저가 준비했는데 서로 사적인 이야기 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도 더 잘 알게 되고 재밌었다. 화상채팅이 역시 분위기도 훨씬 좋고 재미있었다. 부서회의에는 실적 발표 자축에 이어 각자 보낸 사진들을 꼴라쥬 해서 각자 하나씩 설명했는데 나는 매년 연초에 찍는 우리 가족사진을 보냈고 다들 요를의 얼빠진 표정을 사랑했다. 고영은 지구촌인의 사랑입니다.
집에 오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면서, (한잔 반 정도 마신 샴페인의 기운이 다 가셨길 기도하면서) 오늘은 묘하게 일을 별로 못했는데도 마음이 불안하거나 서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헐리데이 시즌의 훈훈함이 나에게도 좀 전해졌나 봐. 점심 같이 먹은 동료들이 머뭇거리면서 내 크리스마스 계획을 물어봐서 친절한 친구 부모님이 우릴 초대해줘서 같이 식사한다고 했더니 다들 매우 안심한 얼굴을 하며 (ㅋㅋㅋ) 정말 진정한 크리스마스 정신이라고 그 집안을 칭찬했다. 그래. 나도 너의 걱정을 덜어 줄 수 있어서 기뻐. 다들 디저트로 나온 라이스 푸딩(쌀을!! 우유랑 설탕을 넣고 졸인 뒤 위에 설탕을 또 뿌려먹는 이상한 음식)을 맛있게 먹길래 나는 이게 도저히 용납이 안된다 했더니 다들 재밌어하면서 '우린 아직 원시인 같아서 그래!'라고 농담하길래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속으로 좀 뜨끔했다. 예상치 못한 강한 반격에 대해서 '너넨 그럼 파스타를 달게 요리해서 먹는 거 어떻게 생각해? 나에겐 마치 그런 느낌이야!'라고 내가 말하니까 전부 다 입을 모아 '그것도 먹을만할 것 같은데?' '우리 어릴 적에 그렇게 먹은 적 있어' '독일 어린이들 파스타에 설탕 뿌려먹는 거 좋아해'라고 해서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고, 진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조금 즐거운 하루였던 것 같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오늘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이상한 글을 봤는데 '10대-20대 힘들다고 징징대지 마라 30대-40대는 더 힘들다'는 뭐 이런 류의 우스갯 소리였다. 근데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는데, 10대-20대가 훨씬 힘들었고,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마도 그 시기의 대부분을 학교를 다니며 보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과제 등을 통해서 늘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매 시기마다 기대되는 성취를 해왔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회사를 다니고 한 달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 뿐이다. 그리고 돈은 오롯이 내가 쓸 수 있는 돈이다. 매일 8시간 10시간가량을 회사를 위해 써야 하는 게 좀 별로지만 그래도 휴가도 쓸 수 있고, 가끔 일하기 싫으면 농땡이 부리기도 하고, 이 머나먼 타국에서 농담 따먹기 할 동료도 만날 수 있는 곳이니 버틸만하다. 그리고 이렇게 1년을 버텨 내면 그 1년만큼이 내 이력서에 경력이 된다. 회사 다니는 게 학교 다니는 것보다는 절대적으로 할만한 것 같다.
그래도 내일 출근은 하기 싫다. 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