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큰 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내가 타고난 성대에 비해 말을 작게 하려고 신경을 썼다. 신경을 쓰지 않다보면 가끔 목소리가 너무 크게 나가고는 했고, 그럴 때마다 창피함을 느꼈다. 그런데 여기서는 되게 많은 사람들이 크고 강하게 늘 뭔가 말을 하고 있다. 나는 이들 사이에선 말수가 많지 않은 편에 속한다. 외국어로 말하는게 덜 편해서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왜들 저렇게 쓰잘데기 없는 부연설명을 중요한 것처럼 길게, 큰 소리로 말하지?' 싶은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제는 나도 비슷하게 되었다.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를 한국에서는 돌려 말하거나 그게 귀찮을 경우 많이 참았지만 이젠 그냥 말해버린다. 그리고 좀 큰소리로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가 단번에 못알아 듣기도 하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임 같은데서 한참 떠들다 보면 쉽게 목이 아파옴을 느낀다. 아무튼 그래도 외국어로 이야기 할 때는 크게 말하는 편이 나은 것 같다.
무시당하는 것을 더더욱 참을 수 없게 되었다.
크게 이야기 하게 된 원인이 이거다. 한국에서 살 때도 당연히 무시당하는 것을 견디지 않았다. 반박을 하거나 비아냥 댔다. 나는 기본적으로 가치판단 기준이 내 안에 있다. 남의 가치에 별로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중심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거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고집쟁이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상대가 남자 어른이라는 이유로 그의 어처구니 없는 소리가 내 소리를 덮을 때가 많았다. 여기에서는 인종적인 스테레오타입까지 가세했다. 물론 내가 알고 관계하는 이른바 백인들은 다 자기가 깨였고, 그런거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거의 매번 목격한다. 그들의 애로건스함을. 그들이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인을 얼마나 얕잡아 보는지를. 좀 더 일찍 문명과 산업의 발전을 한 백인국 출신들이 더 낫다고 마음속 깊이 믿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데 나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근자감과 문화적 자존심이 깊은 성찰 및 소양쌓기를 방해하는 면이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유학생들만 만나봐도 아시아 친구들의 성실함과 명석함을 따라오는 유럽이나 아메리카 출신 아이들 별로 못봤다. 똑똑한 애, 성실한 애, 명석한 애는 있어도, 똑똑함+명석함+성실함을 다 갖춘 경우는 아시아나 아프리카 출신 친구들로부터만 목격했다. 일반화는 미안하지만 내 삶에서 쌓인 빅데이터에 근거한 결론일 뿐이다. 그래서 특히 백인 남자가 지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척 멍청한 소리 할 때는 더더욱 목소리 높여 반박하려고 한다. 그러려면 배워야 하고,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 태도는 나를 발전시킬 것이라 믿고 있다.
전문성은 인정받아야 한다.
앞의 두가지 변화로 인해 사실 삶이 많이 피로해졌다. 수동적인 자세로 살아도 아무 문제 없이 오히려 무난함이 이득인 사회에서 살다왔으니 그쪽이 역시 편하기는 하다. 그래서 반대로 내 멘탈의 수고를 좀 덜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잘 아는 분야라도, 거기에 대해 공부하고 직업적인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찾게 되어 완전히 의지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사실 예전에는 남을 믿어도 100% 의지하지는 않았다. 꼭 내 손을 마지막에는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만든 결과물이 조금 내 마음에 안들고 나랑 방식이 다르더라도 그냥 그대로 놔두고 신경쓰지 않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사실 이건 백종원의 골목식당 보면서 배운 것 같기는 하다.
좀 더 내 중심적이 되고 있다.
지난 2년반 동안 정말 많은 가치혼란이 있었다. 내가 나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기도 했다. 내가 살던대로, 생각하던 대로, 행동하던 대로 사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로 한국에서는 누가 재채기 한다고 '걱정해주는 척'을 절대로 하지 않는데, 여기에서는 꼭 한마디씩 다들 해주는 것. 이런 문화적 차이점이 되게 웃겼고, 그걸 배우기까지는 어떤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는 당황한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당황함을 많이 느꼈다. 캐나다에서도 2년가까이 산 경험이 있는데, 거기서 느낀 것보다 훨씬 많은 당황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친구들과 한꺼번에 관계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즈음엔 독일인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데 확실히 따라야 할 사회적 가치기준이 하나니까 편하다. 아무튼 이 엄청나게 다양한 환경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눈치 봐서 집단의 문화에 적응하려 하지 말고 그냥 내가 믿는대로 행동하자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도 있었고, 너무 바빠서 졸업도 다 해버린 이제서야 그걸 완전히 깨달은 것 같지만 better late than never.
페미니즘, 강해져야 한다는 마음가짐
이건 독일와서 심심해서 본격적으로 많이 이용하게된 트위터 서비스에 의해서 이루어진 변화이기도한데, 수많은 페미니즘이 가진 '나에게 이득인' 사상 가운데 나는 강해질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가장 큰 변화로는 더이상 다이어트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살이 빠지면 불안해진다. 근육과 근지구력, 폐활량을 키우려고 운동을 한다. 그리고 나는 예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피부관리하고 제모하고 살빼고 할 시간에 책 읽고, 디자인 리서치하고, 일기 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게 취업시장에서 내 가치를 올리고, 내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한다. 그리고 캡틴 마블이 한 말처럼 난 내 가치를 증명 할 필요가 없다. 인정받으려는 노력을 할 시간에 그냥 날 자체로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다행히 주변에 건강한 페미니스트가 많고, 그들과 영혼이 통하는 대화 잠깐이 엄청난 충족감을 준다는걸 경험했다. 좀 잘난척한다는 말 들으면 어때. 잘난 부분이 있으니 척도 가능한거고, 애초에 남한테 그런 말을 하는 인간 자체가 글러먹은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허하고 겸손해야 한다.
이 가치를 굳게 믿고 살아야 하는 한국인으로써 이로 인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아서 위와 같은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하고 겸허한 자세가 결국은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게 통하는 상대와 더 깊은 관계로의 발전이 가능하다는건 변함없이 믿고 있다. 비즈니스 5-6년 공부해서 석사학위까지 취득했다고 이코노미와 파이넌스에 대해 다 아는 척 블라블라하는 요란한 빈수레들과 어울리다보니 좀 너무 피곤했나보다. 사실 이 부분은 난 크게 관심이 없으니 더 잘아는 사람이 떠들어도 그냥 가만히 듣다가 모르는 것은 배우면 그만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내가 진짜 관심있는 주제, 디자인, 유엑스, 세계요리(...)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사실 내가 아는 것이 꽤 많을지라도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내가 떠들기보다는 남들의 생각과 견해를 듣는 편이 나에겐 훨씬 이득인 듯 하다. 그리고 증명은 나를 믿고 고용한 회사와 팀안에서만 하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공부하면서 배운 유용한 지식이나 팁이 조금 쌓인 것 같아서 공유하고 싶은 욕구도 조금 있다. 그래서 블로그를 하나 그 주제로 만들어볼까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