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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시골쥐의 도시나들이


어제 대략 3개월만에 도시바람 쐬러 프랑크푸르트에 기차타고 혼자 다녀왔다. 간만에 각종 회사 CI가 달려 있는 고층 빌딩들, 양복입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대중교통 지도와 사인을 보니 숨이 확 트이는 느낌이었다. 걸어가는 곳마다 상점도 많고, 아침에 일어나서 와플 한쪽 구워 먹고 점심때 쯤 바나나 하나 들고 나왔는데도 케밥, 부리또, 바게뜨, 샌드위치 등등 넘치는 상점에 배 고플 걱정이 없는 도시 나들이. 목적없이 걷기만 해도 너무 좋다. 그렇지만 시골에 사는 사람이 도시에서 한나절 여가를 알차게 보내려면 꼭 체크해야 할 리스트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문화생활 - 서점을 가든, 상점가 쇼윈도를 통해 트렌드 업데이트를 하든 문화적 인플로우가 아주 중요하다. 큰 도시에 있는 공공 예술기관의 뛰어난 큐레이팅으로 진행되는 특별전시가 있다면 가급적 보는 편이 좋다. 올 해는 바우하우스 100주년이라 바우하우스 관련 전시는 여건이 되면 무조건 보기로 마음먹었으므로 응용예술 뮤지엄의 프랑크푸르트 모더니즘 전시를 보았다. 너무 너무 너무 좋았다. 2층에서 진행중인 디터람스 전시는 시간관계상 생략했다. 한국에서도 대림미술관에서 한 특별전을 통해 본 적 있고, 북유럽 여행 할 때 이미 몇 번 봤으므로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근처에 사는 친구 커플에게 혹시 몰라 연락을 해봤는데 급작스러운 연락에도 불구하고 둘이 시간내서 나와줘서 같이 전시를 봤다. 셋이서 낄낄대며 전시보니까 더 재미있었다.


2. 카페 - 사실은 괜찮은 로스터리를 찾아가서 싱글오리진 하나 마셔보고 괜찮으면 원두도 사오고 싶었는데 시간관계상 미술관 카페에서 카푸치노 한 잔 마시면서 쉬는 것으로 대신했다. 미술관에 가면 미술관 카페도 어지간해서는 들르는 편이 좋다. 미술관 건물은 보통 멋있고, 정원을 바라보며 마시기 좋기 때문이다. 달랑 3유로에 호사스러운 오후 한나절을 만끽 할 수 있다.


3. 큰 도시에만 있는 스토어들 - 온라인으로 거의 모든 물건을 살 수 있지만 큰 도시에만 마케팅의 의의를 두고 운영하는 본사직영 쇼룸은 구경 자체가 너무 재미있다. 디자인하우스 스톡홀롬과 Habitat.de를 구경했다. 스칸디나비아 풍의 가구나 소품들 진짜 아름답다. 그러나 가격이 진짜 늘 내가 예상하는 가격대의 1.5배에서 두배정도 되어서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 첫 월급을 타면 일 할 때 앉을 좋은 의자를 하나 사고 싶었는데, 그냥 이케아에서 사야 할 것 같다. 이 날의 큰 수확은 이케아에서 나온 인체공학형 의자가 169유로인데 처음엔 되게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디자이너의 가구들을 보고 나니 이제 매우 저렴하게 느껴지게 된 것이다.


4. 오덴틱한 일본 음식 - 저녁을 맛있는 것으로 먹기로 결심했다. 아무래도 집 근처에서는 전혀 찾을 수 없는 제대로 된 일본 음식점으로 갔다. 사시미도 괜찮게 하는 이자까야였는데 꼬치구이도 괜찮고 해서 이 것 저것 야금야금 시켜 먹고 맥주먹고 사케먹고 또 맥주먹고 하다보니 친구랑 둘이 100유로어치를 둘이서 먹어치웠다. 간만에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1도 들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도 있겠다, 좋은 술도 있겠다, 진짜 찾기 힘든 비슷한 처지의 동갑내기 친구랑 거의 다섯시간 수다를 떨어버렸다.


결국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미리 사둔 기차표에 찍힌 날짜가 지나버려서 마인츠에서부터는 새로운 티켓을 사서 왔다. 약간의 초과 지출이 있었지만 너무 재미있고 행복한 도시 나들이였다. 남편이 없이 혼자 멋대로 다녀서 더 좋았다. 남편은 좀 모든 일에 나보다 훨씬 더 가성비를 따져서 재미가 뚝 떨어진다. 올 해는 이미 짜여진 여행계획 때문에 혼자 긴 여행은 못 갈 것 같다. 대신 간간히 이런 나홀로 나들이를 챙겨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