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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휴가계획을 세웠다

사실 휴가같은건 계획 없이 가는 편이 좋은, 삶에 지친 한국인 1인이지만, 미리 예약 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교통, 숙박비 차이가 너무 큰 유럽에서는 할 수 없이 몇 개월 전 부터 계획을 짜야 한다. 한국에서라면 제법 넉넉히 기간을 둔 측에 속하는 한달 전 쯤에 이 모든걸 예약하려고 하면 일단 남아있는 숙소의 상태가 다 끔찍하고(베드버그가 출몰하는 아주 싸구려만 남거나 아주 비싼것만 남는다), 가격도 3개월쯤 전에 예약 할 때에 비해 두배는 비싼 경우도 종종 봤다. 


휴가 계획을 가장 가깝게 같이 일하는 동료와 상의하고 동의를 얻었다. 이제 매니저에게 통보식으로 전하기만 하면 될 것 같다. 3월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어서 올 해는 휴가가 25일 뿐이라고 조금 투덜댔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낄만큼 휴가를 세개나 계획하고 봐도 4일정도가 남는다. 올 해는 한국을 짧게 방문하려고 한다. 아무도 눈치를 주지는 않지만 작년말에 3주 동안 자리를 비우고 바로 크리스마스 연휴가 와서 다른 사람들이 휴가를 가는 바람에 거의 5주를 붕 뜬 상태로 보냈더니 흐름도 다 잃어버렸고, 이 팀에서 나의 존재에 대한 위태로움을 조금 느꼈다. 올 해는 신입사원답게 몸을 조금 사리는 걸로. 라고는 해도 21일치 휴가를 미리 정해서 통보해 놓고 뭐가 사리는건가 싶기는 하다. 그래도 미리 말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내 계약서에는 일 년에 총 30일의 유급휴가가 있고, 병가가 따로 있다. 병가야 뭐 진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쓰는 것인데, 존재 자체가 너무 고맙고 너그럽다고 생각한다. 결국 건강하고 쌩쌩 할 때 6주간 쉬어도 돈이 나오는 것이다. 일년이 52주이고, 그 중 6주가 '쉼'에 허락된 시간이다. 이 자체로 정말로 많은 불만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독일에서 일하는 동료들도 이렇게 휴가를 가기 때문에 (안 쓴 휴가는 돈으로 받는 계약의 동료들은 다 안쓰기도 하지만) 회사는 사실상 일년 내내 휴가와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휴가에도 기술이 필요한 것 같다. 왜냐하면 내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5주는 정말 긴 시간이기 때문이다. 올 해는 어쩔 수 없이 여행을 세 번 가게 되었지만, 그냥 집에서 아무 것도 안하고 쉬는 휴가도 필요할 듯 하고, 세 여행 전부 약간 소셜라이징의 의무감에 가는거라 나를 위한 여행을 따로 계획해보고 싶기도 하고 그렇다. 업무 강도가 한국에 비해서는 높지 않기 때문에 퍼져 쉬는데 쓰는건 딱히 필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렇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나중엔 이 것도 매우 힘들다고 투덜대겠지. 그리고 어제 일기에 썼지만 기본 생활비의 압박으로 돈이 많이 없다. 남편이 공부하는 동안은 저축은 딱히 생각하지 않고 있어서 그나마 여행 다닐 수 있는 듯. 이렇게 살다가 빈곤한 노인이 되겠지만.


그 외에도 이사 할 때, 결혼 할 때 라든지 특별히 나오는 유급휴가에 대한 정보들을 독일 친구들이 깨알같이 공유하는걸 들었다. 정말 좋은 환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