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주룩주룩 비가 온다. 그저께도 한두방울 날리긴 했다. 빗길에 운전을 하니 위험할 뻔 했을 수도 있겠다고 느낀 지점이 많았다. 운전은 언제쯤 익숙해질런지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평생 이렇게 주의깊게 운전하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비가오는 아침에 출근 때문에 허둥댈 필요가 없어서 오늘은 정말 좋다. 아침에 머리맡에는 노르망디가, 침대 밖으로 삐져나온 내 손에는 요를레이가 부비작대는 행복까지 맛봤다.
하지만 마음이 편한건 아니다. 회사에서 2주째 랩탑 세팅을 못 받고 있다. 온라인으로만 연결되어있는 미국이나 러시아쪽 동료들과 전혀 소통을 못하고 있음은 물론 사실 아무런 일도 못 하고 있다. 매니저가 미국사람이라 되게 답답하다. 아무튼 사무실에 갈 필요도 없는데, 아예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집에만 있다면 모두들 내가 아무 일도 안하고 돈만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할테니까 괴로워하고 심심해 하는 모습을 보여주러(?) 삼일간 출근했다. 도대체 회사용 유럽 서버가 어떻게 아작이 났길래 이주째 고쳐지지 않는지 되게 신비롭다. 클라우드 서비스 컴퍼니잖아. 도대체 이게 뭐냐고.
금요일은 어차피 사무실 나오는 동료도 없고 오늘은 집에서 마냥 대기하고 있다. 오후에는 그냥 놀러갈거다. 간만에 도시바람 쐬러 프랑크푸르트행 비싼 열차를 예매했다. 친구도 만나고 전시도 보고 그동안 논문쓰느라 아프느라 미뤄뒀던 여가를 좀 즐겨보려고 한다. 저녁에는 거의 유일한 한국인 직장인 친구를 만나서 스시도 먹을꺼다. 꺅.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어서 도대체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 신입사원이기는 해도 1년간 이 팀에서 일했고, 현재 일을 못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회사의 책임이지 내 책임이 아니다. 그렇다고 일을 전혀 안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로썬 아예 없다. 오늘이나 월요일에 매니저에게 지난 2주간 뭘 했는지 대충 요약한 이메일을 보낼까한다. 그리고 앞으로 랩탑이 계속 없을 경우 뭘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렇게 숙제검사 받듯이 보낼 필요까지는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멋대로 생각하게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그래. 그러자.
정말 당황스러운 한 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