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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쉬는 시간 만들기

누구나 삶의 매 시기마다 아직 이루지 못한 장단기 과업들을 등에 진 채, 생존을 위한 일과를 수행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아니면 시간이 나는 때에 조금씩 그 장기 과업을 덜어내기 위한 활동을 한다. 그 과업이 많은 사람들은 자유시간이 적은 편일테고, 그 과업이 적거나 아주 장기간에 걸친 과업이라 일 하나당 나뉘어진 토막이 작을 경우 자유시간을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쓸 수 있을 테고, 따라서 취미생활이나 여흥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나는 지금 매일 해야만 살 수 있는 일과 - 회사에서 일하기, 집안일, 고양이 돌보기 - 를 제외하고, 단기 과업은 논문쓰기, 중단기 과업은 독일어 배우기 및 구사하는 언어들 실력 향상시키기, 일을 위한 스킬 및 지식 향상, 장기 과업으로는 건강하게 살기 위해 근육량 늘이고 식생활 및 영양소에 대한 지식 늘이기가 있다.


나는 내 과업이 당연히 무겁게 느껴지지만, 사실 누구나 이정도 무게는 짊어지고 갈 것이다. 내가 특별히 강하거나 욕심이 많거나 부지런한 사람이 못됨은 잘 알고 있으니까. 현재 과업을 조금씩 덜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일부러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독일어 학원을 다니거나, 영어든 한국어든 책을 많이 읽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긴 출퇴근길에 늘 책이나 전자책을 들고 다닌다거나 한다. 하지만 덜어내는 속도가 너무 더디게 느껴져서 걱정이 되고 지친다.


그리고 이과업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쉬는 시간에도 그다지 잘 쉬고 있지 않다. 퇴근해서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씻으면 1시간정도 놀 수 있는데, 오늘 하루는 과업을 덜기 위한 노력을 하나도 안했다는 죄책감에 재밌는 것을 보거나 그냥 고양이랑 딩굴 대며 편히 쉴 수가 없다. 재밌는 추리소설을 읽을 때도 집중이 안돼서 몇 장 읽지 못하고 덮어버리고 만다.


잘 쉬고 났을 때 나타나는 긍정적인 효과를 많이 경험해 봐서 이젠 과업 성취 뿐만 아니라 잘 쉬는 전략도 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예를들어 나는 여행을 할 때는 아무래도 이런 과업을 싹 떨쳐버리고 현지에서 보내는 시간에 집중하니까 결과적으로 많이 걷고 몸은 피곤 할 지언정 정말 잘 쉬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오면 일상생활도 훨씬 활기차게 하고, 영어나 독일어도 평소보다 잘 된다. 기쁘고 건강한 마음이라서 말도 다정하게, 표현도 다채롭게 할 수 있게 되나보다. 물론 일도 훨씬 집중해서 잘 한다. 왜냐하면 돈을 왕창 써버렸으니까 벌어야 하거든.


그렇다고 자주 여행을 가자니 형편이 그렇게 안되기 때문에 집에서 시간을 보내도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쉴 수 있는 느낌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차라리 조금 괴롭더라도 매일 또는 매주 과업성취에만 기여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노력하는 편이 좋을까? 이런 식으로 공부나 뭔가를 열심히 해 본적도, 성공 해 본적도 없어서 망설여진다. 일단 죄책감만 어떻게 치워버리면 쉬는데 장애물을 하나 제거하는 것이니까 의미 없는 시도는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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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 생각

그동안 쭉 부정까지는 아니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이런 저런 변명으로 희석시켜 오다가 그냥 최근에 포기하고 받아들인 사실이 있다. 나는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의 95%는 먹는 것을 생각하는데 쓴다. 당장 오늘 저녁 먹을 것부터, 한국에 가면 먹고 싶은 것, 어디에 여행 가면 먹고 싶은 것, 주말에 3-4시간을 통채로 써서 요리해보고 싶은 것, 이번 여름동안 시도하고픈 식습관, 다이어트 방법, 나이들어서까지 쭉 좋아하고 잘 먹을 수 있는 영양 지식, 고양이가 사료 걱정, 다른 집 식문화와 그 것이 문화에 끼치는 영향 등등. 나머지 5%도 잘 먹고 살기 위해 돈을 꾸준히 잘 벌 방법, 많이 먹어도 살이 덜 찌도록 기초대사량을 늘이는 방법을 생각하는데 쓰므로 사실상 100% 먹는 것만 생각한다. 

그냥 먹기 위해 산다. 어쩌면 이 인생 과업이 너무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걸 줄이는게 가능하기는 할까? 음식관련 일을 했어야 했던게 아닐까? 아니면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건가? 이 열정을 이용해서 과업을 좀 더 빨리 달성하는 기가막힌 아이디어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