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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아무튼 글을 쓰는 것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은 마음만 폐 두쪽 사이에 이물질처럼 뭉쳐 숨어있고, 숨 쉴 때마다 부담만 느끼는 채 도무지 시작할 생각을 않는다. 사실 그렇게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금 쓰는 이 일기장을 사용한지도 벌써 몇년인지 모르겠다. 관리하기가 굉장히 편하고, 또 바로 최근에 쓴 글이 보여서 다시 읽으며 며칠 전을 돌아볼 수 있는 이 스킨이 좋다. 티스토리가 쭉 블로그 서비스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편한 도구가 주어져 있고 키보드를 두드려서 생각을 적어내려가기만 하면 되는데 왜 자주 안쓰는지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11살 쯤부터 나는 일기를 쓰는 인간이었다. 세상에는 일기를 쓰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 쓰는건 아니고, 딱히 하루 일과랑 관련 없는 것들만 쓰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꾸준히 뭔가를 써 왔다. 그리고 조금 특별한 점은, 늘 온라인에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만들어 놓고 일기를 그 곳에 썼다. 불특정 다수가 언제든 볼 수 있는 글을 이십년 넘게 써 온 것이다. 어릴 때 쓴 것은 기술이 부족해서 데이터를 잃어버렸고, 이 블로그에 백업된 첫 데이터부터 오늘까지 글이 쌓여 있다. 그 때와 오늘의 나는 생각하는 방식도 많이 다르고, 믿는 것도 다를 것이다. 아마 예전에 쓴 글을 지금 읽어본다면 실망스럽고 창피할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꾸준히 써 온 덕분에 글을 잘 쓰는 기술같은건 없지만 그래도 글 쓰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다. 내 글쓰기 실력이 나아졌다기 보다는 창피함에 덤덤해 졌기 때문인 것 같다.


일기는 기본적으로 나를 위해서 쓰는 글이다. 아무나 볼 수 있는 공개된 온라인 게시글이지만 나는 누가 읽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는다. 간간히 찾아와서 댓글도 달아주고, 한동안 안쓰면 요즘 내가 일기를 안쓴다고 투덜대는 오랜 친구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누군가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글을 쓰는게 나는 재미가 없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를 쓰는 능력이 부족해서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주절주절 모놀로그를 쓰는 것은 재밌고, 나 스스로에게 되게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살면서 이렇게 내 생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말 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다고 해도 좋기 때문이다. 소통을 위한 이야기는 그래서 어렵다. 내가 가진 생각을 지루하게 0부터 100까지 순차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서, 상대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 이야기를 이해하고 믿게끔 만들어야 한다. 이야기꾼들은 정말 대단한 능력자인거다.


매 시기마다 내가 깊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게을러서 그런걸 일일이 일기장에 쓰지는 못한다. 요즘에는 단발적인 생각을 트위터에 적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일기쓰기에 게을러졌다. 하지만 트위터의 단점은 역시 길게 말하지 못한다는거다. 길게 풀어서 써보지 않으면 나도 가끔 내 생각 중간에 길을 잃고 만다. 내가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된 생각의 근거를 하나씩 차근이 풀어 생각해보지 않으면 그 결론에 대한 믿음이 약해진다.


아무튼 글을 써야 한다. 이 정도 짧은 글을 쓰는데에도 30분 정도가 걸리는데, 게으름 피우며 시간을 빈둥빈둥 보내는 입장에서 이 30분을 아껴서 차라리 다른 것을 하는 것이 낫다는 조바심이 들지만 그래도 그 생각을 떨쳐야 한다. 그리고 전처럼, 일기를 자주 쓸 때처럼 글을 쓰며 생각을 발견하고, 정리하고, 또 위로 받아야 한다.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