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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발란스란걸 어떻게 맞추는거야 도대체

이상하다 싶을만큼 되게 자주 듣는 말. Work-life balance. 쉽게 말해 돈을 벌기 위한 '일'과 그 외의 '삶'의 발란스를 맞춰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게 내제된 말.


하지만 이게 어디까지가 돈을 벌기 위한 일이고, 어디까지가 삶인지 어떻게 선을 긋지? 예를들어 직장에서 일을 잘 하기 위해 독일어 학원 저녁반을 다니는 것도 그럼 일의 연장선 아닌가? 하지만 나는 오히려 돈을 내고 배운다. 


그리고 일 하는 중간 중간에 쉬게 될 경우, 일을 하러 기차를 타고 두시간가량 달려가야 하는 나의 경우 이런 시간은 '일'에 넣어야 할까 아니면 넣지 말아야 할까? 만약 내가 출근 기차 안에서 엄청 재밌는 추리소설을 읽는다면?


게다가 돈을 버는 목적은 아니지만 해야 하는 일, 청소, 요리, 빨래 등은 일에 속하는 거야? 아니면 생활에 속하는거야?


또 질문, 일은 얼마만큼, 삶 또는 생활로 번역해 생각할 수 있는 life는 얼마만큼 시간과 노력을 분배해야 발란스가 맞다고 할 수 있지? 하루가 24시간이고, 생존을 위해 8시간정도는 잠과 화장실 가는데 쓴다고 치면 나머지 16시간을 어떤 비율로 갈라 써야 하는거야?


나는 요즘 워낙 다면화 된(?) 삶을 살고 있다보니 이게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거고, 어떻게 맞춰야 한다는건지 골똘히 고민하게 된다. 본분은 학생이지만 요즘은 정기적으로 참석해야 할 수업같은건 없다. 논문을 써야 하지만 아직 생각도 안하고 있어서 휴학생에 가깝다. 회사에서는 주 3일만 일하지만 일터가 워낙 멀다 보니 일하는 날은 눈 떠서 회사 갔다가 집에 오면 또 자야해서 내 시간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주 2회 독일어 수업을 듣고 있는 어학원생 이기도 하다. 단기 목표도, 무엇과 무엇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할 지도, 내 정체와 본분이 헛갈리는 와중이라 결정한게 하나도 없다. 


그 와중에 활력을 위해 운동을 주 3~4회 하고, 출퇴근 시간 등을 이용해서 책을 읽거나 뜨게질을 하고, 주 1회 언어교환 파트너와 만나서 언어공부를 하고, 주말에 밀린 집안일과 요리를 몰아서 하고, 매일 잠깐씩 고양이를 돌보는 정도가 나의 life라고 할 수 있다. 여행도 가끔 가는데, 당분간은 머릿속이 복잡해서 가고 싶지 않다. 아무튼 요즘 스스로가 너무 바쁘게 느껴져서 뭔가를 줄이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싶은데, 어떤 것을 줄여야 할지 잘 감이 안온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지금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 무언가를 그만둬서 시간을 약간 더 번다고 해서 그 시간에 어떤 것을 채워넣을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무언가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있다. 가령 전시회를 본다던가, 음악을 들으러 간다거나 하는 문화생활을 한 지 참 오래되었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도 느낀다. 물론 주말에 약속이 꽉 잡혀 있지 않는 이상 휴식이 부족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머리속이 정말 복잡하다.


더 언급하기 좀 지겹지만, 언어 문제도 있다. 하루에 3가지 언어를 써야 하는 날은 정말 돌아버릴 것 같다. 내가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조차 감이 잘 안온다. 언제쯤 이런 것이 편하게 느껴질까. 지금 하고 있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그런 날이 아무래도 훨씬 늦게 오지는 않을까. 조바심까지는 아니어도 언어공부에 시간 투자하는 것은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근거없는 확신이 있어서 줄이고 싶지가 않다.


머리 속에 무수한 생각이 떠다니고, 그게 가라앉아 자리를 잡는 시간이 필요한데, 사실 그 동안 그러려면 어딘가 여행을 가야만 했다. 몇 날 며칠을 피곤한 몸으로 돌아다니며 이동할 때마다 강제로 기차안에 몇시간동안 갖혀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돌아올 쯤에는 이제 이런 유랑은 그만하고 돌아가서 이 것을 꼭 해야지, 아니면 무언가는 무조건 관둬야지 하는 적어도 하나의 일상 활동에 대한 의견이 명확해진다.


그런데 일기를 쓰다보니 답을 찾았어. 내일은 집안일에 올인 할 생각 접고 어딘가 기차를 타고 가든 걸어가든 낯선 곳에 가서 혼자서 시간을 좀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