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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While we are young

끝내주는 영화를 봤다.

영화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수작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요즘 사람들이 흥분해서 떠드는 매드맥스 같은 뭐 그런 종류의 흥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나는 개인적인 두가지 이유로 아주 만족스럽게 이 영화를 보고 막 나와 

스타벅스에 앉아 이 일기를 쓰고 있다.


첫번째 이유는 타이밍.

예정된 스터디가 1시간전에 급박하게 취소되었다.

평소의 나라면 이런식의 무례한 취소에는 화가나게 마련인데, 오늘따라 왠지 파트너분이 취소문자를 보낼 것 같다는 예감, 또는 기대가 들어서 밍기적대고 있었다.

예감이 기가막히게 맞았고, 취소 문자를 받자마자 보고싶던 이 영화를 예매했다.

그래, 사실은 어제 문득 아직 이 영화가 하고 있나 싶어 CGV 사이트를 보다가 스터디시간과 겹치는 것을 알고 낙담했었다. 한 적 없는 기도가 통했나보다!


두번째 이유는 영화의 주제다.

대단한 주제라기보다는, 내가 바로 어제 수영장 가면서 골똘히 고민했던 내용에 대한 이야기였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While we are young, 아직 우리가 어릴동안, 그리고 그 이후는 무엇일까?

내가 나이들면, 나이가 들어서 더이상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시력, 체력, 정신력, 등등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지금도 썩 충분하지는 않은데, 지금보다 훨씬 더 사그러 들 나의 생명력을 생각하면 괴로워진다.


최근 가족에게 청천벽력같이 쏟아진 엄마의 파킨슨병 진단을 계기로 더 이문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답이 나오지 않고 우울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누구도 이 "진행"을, 나이가 드는 것을, 시간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거다.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는 파킨슨병처럼, 우리는 누구나 나이듦에 따라 퇴행을 경험한다. 그 원인과 해결책은 진시황도 찾지 못했다.

의사도 신뢰할 수 없다. 어차피 의사도 시스템 속에 고용된 노동자일 뿐이라는 것을 몇차례 대학병원 방문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수많은 손님중의 하나일뿐인 엄마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이해하거니와 세상에 어찌 그리 아픈 사람이 많은지 막막할 따름이다. 어떤 특권도 기대할 수 없는 우리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새치기 당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어제는 1층 카페에 손님으로 오신 할아버지 한분이 건물 1.5층에 있는 화장실에 들르셨다가, 다시 카페로 들어가는 뒷문을 찾지 못해 나에게 물어보셨다. 그정도의 건망증이야 한참 어린 나도 남얘기는 아니지만, 약간 창피해 하면서 물어보시는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서글픔이 보였다. 그리고 아마 약 30여년 후의 나도 똑같은 문제로 스스로를 안타까워 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30년은 사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흐를 것이다.


저녁에 수영장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고, 운동복과 러닝화를 장착하고 빠르게 아파트단지 산책로를 걸었다. 많은 노인분들이 운동삼아 걷고 계셨다. 그 중에 나만큼 빠르고 곧은 자세로 걷는 분이 안계셨다. 원하는 만큼 빠르게 걷지 못하게 되면 기분이 어떨까?


마음가는대로 걷거나 뛰고, 사고하고 행동하지 못하게 될 때가 반드시, 그리고 꽤 금방 찾아올 것이다.

파킨슨병에 대한 책을 읽어보니 드물긴해도 3-40대에서도 발병한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 인간이 충분히 오래 살기만 한다면 누구나 인생의 말미에 경험하게 되는 병이 파킨슨병일 것이라고 한다. 사실상 소모품인 인간의 장기중 하나인 뇌는 제대로 관리해도 100년을 겨우 쓸 뿐이다.

그 후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지금처럼 2-5년안에 이뤄야할 큰 목표가 있고, 그 중간중간 끼워맞춰 나가야 할 자잘한 지침을 실천할 수 있을까?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다음 여행지는 어디로 계획할까? 여행을 갈 수 있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최대한 오래 이런식으로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걸까? 그 노력이 너무 지나쳐서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건 아닐까?


질문만이 쏟아지고, 잠들 때까지 답을 전혀 구하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이 영화에서 희미한 힌트를 얻었다.

김빠지지만, 아마도 다른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