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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일기 쓰는 사람

세상 사람들을 여러가지 기준으로 양분할 수 있다.

나는 일기를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중에 쓰는 사람에 속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자발적으로 온라인에 일기를 써왔다.

국민학생이었던 4학년 까지는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난 진짜 '초등학생' 때부터 일기를 쓴 것이다.

국민학교와 초등학교의 간절기를 겪은 사람들만의 시점 계산법이다.


가끔 비밀글로도 쓰지만 대부분은 공개글이다. 나를 알건 모르건 누구나 읽을 수 있다.

개인정보 침해가 심각해진 시대에 좀 위험한 발상같지만 상관없다.

내 개인정보를 남이 알아봐야 별 쓸 데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만일 이로 인해 무언가 침해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내가 충분히 그러지 못했음을 반성해야지.


아무튼 나는 일기를 쓰는 사람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사람들 사이에선 일기를 쓰면 속이 좁은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전해졌는데, 맞다.

나는 속이 넓지 않고, 어지간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대게 일기를 쓰기보다는 그 때 그 때 화를 내든, 짜증을 내든, 찬찬히 대화해서 조율을 시도하든 그 자리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내 일기장에 일상의 내용은 거의 기록되지 않는다.

이게 남들이 읽어도 별 쓸 데 없는 이유중에 하나다.


그러다보니 주로 나에 대해 쓰는데, 나의 생각, 성향, 생활에 대한 고찰이 많은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어떤 사람은 명상, 운동 등등 갖가지 방법으로 시간을 내어 자신을 만난다. 나는 일기를 쓴다. 그리 큰 차이는 아니다.


남편은 일기를 쓰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종용해서 한동안 쓴 적이 있다.

하지만 늘 오래가지 못했다. 남편은 일기를 쓰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이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언젠가 쓰고 싶어지면 쓰겠지. 나는 어지간해서는 남을 바꾸려는 시도를 두번 이상 하지 않는다.

두번째 시도에도 안바뀌었다면 마지막 찬스는 왠지 세번째인 하나 뿐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 찬스를 아껴두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렇다. 마지막 찬스를 써본 기억은 별로 없다. 애초에 남을 바꾸려는 시도보다는 그 사람에 맞춰 대충 다른 마음을 먹는 것이 더 쉽고 에너지가 덜 소모되는 일이다.


최근에는 쓸데없이 말이 길어지는 것을 지양하고 있다. 하지만 내 일기장에선 어쩔 수 없다. 생각나는 대로 쓰기 때문에 횡설수설하고 말도 길어진다. 하지만 내 일기장에서 마저 절제해야 한다면 너무 답답할 것 같다. 뿜어져 나오는 생각을 담아주는 쓰레기통 같은 곳이다. 아 물론 일기들이 쓰레기는 아니다. 가끔씩 엤날에 쓴 일기를 읽으며 재밌는 시간을 보낸다. 아무튼 생각의 쓰레기통으로 이용되어지는 트위터조차 140자로 한정되어 있다. 무한정의 공간은 정말로 소중하다. 이제 쥐메일조차 무제한 용량이 아니게 되어버린 시대다. 흑흑


맞춤법이나 오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쓴다. 미래의 내가 볼 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다. 물론 공적인 문서를 쓸 때처럼 맞춤법 검사기의 도움을 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내가 일기에서 반복적으로 틀리는 맞춤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내가 모르는거다.


나 말고도 일기쓰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물론 난 타인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그 일기를 구독한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 할 때 140자로 제한되어 있는 트위터나 기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써넣는 SNS보다는 일기장을 보는 편이 더 재미있게 그 사람의 삶을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일기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

편지든 일기든 나는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정말 어렵다.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중에 쓰는 것이 직업인 사람은 제외한다. 내가 단순히 좋아하는 것에 대해 너무 진지한 사람은 좀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 사람이 일기를 쓴다면 그건 또 흥미롭다. 뭐 그렇다.


어쨌든 일기는 일기장에 쓰는 나는 참으로 말잘듣는 네티즌인 것 같다. 근데 말야 내 네티즌 경력이 좀 길다.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