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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레이 달리오의 원칙을 읽으며 자아성찰을 해 보니…

나그네가 올 초 한국에 다녀올 때 사온 책이 여러 권 있는데, 그중에 가장 두껍고 재미없어 보여서 여태껏 안 보다가 지난주쯤 집어서 읽기 시작한 책, 레이 달리오의 '원칙'이란 자서전+경영참고서+자기 계발서 같은 책을 엄청나게 재밌게 읽고 있다.

 

이제 분량으로는 절반 정도, 자서전 부분과 삶의 원칙에 대한 부분은 다 봤다. 중간 중간 매우 자주 책을 덮고서 곱씹고, 내 경우엔 어떤가 생각해 가며 읽고 있다. 좋은 책이다. 가장 좋은 점은 간결한 서술로 정말 많은 통찰을 한 줄 한 줄 알차게 눌러 담았다는 것이다. 이른바 가성비가 좋다. 한 문단만 읽어도 배울 점이 수두룩 빽빽해. 군더더기가 거의 없는 서술방식 덕분에 자서전 부분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필요한 일화만 엄선해서 들려주는 느낌이 들었다. 수십 년간 매일 아침 보고서를 써서 고객들에게 보냈다는데, 과연 한평생 글쓰기를 매일 한 사람의 글은 이렇게 탁월하구나 싶다. 그 점이 부러워서 딱히 일기를 쓸 기분이 아닌데도 이 페이지를 쓰기 시작한다.

 

삶의 원칙 부분에서는 가치관이라든지 목표를 설정하고 그 실행이 효율적이기 위해서 개방적 사고를 하는 방식 같은 것들을 원론적으로 들리는 개념들을 설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원칙으로 정하고 삶에 적용하는 방법으로 도구화시켜서 알려준다. 그래서 자아성찰 시간을 좀 가져봤던 것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쓴 방법서답게 용어 선택이 참 탁월해서 이해가 잘 되고 바로바로 적용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나 파악함에 있어, 스펙트럼 양 끝의 지점을 '인생의 풍미를 즐기기'와 '영향력을 갖기'로 표현했다. 그동안 살면서 이런 성찰을 안 해본 것은 아닌데, '성공'보다는 '즐거움'을 추구한다든지, '성장' 보다는 '성숙'에 더 중요도를 둬야 한다고 믿는다든지, 모두 좋은 두 개념이고 생각해 볼 가치라 여겼다. 그렇지만 긴 인생의 시간을 들여 뭔가를 이루고 싶을 때, 가치의 무게를 어디에 두는 사람인지 알고자 하는 내게는 좀 덜 달라붙는, 살짝 잘난 척하는 듯한 고민이란 생각이 드는 가치들이었다. 그런데 '인생의 풍미'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이거다! 이게 내가 찾던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좀 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뭔가를 포기할 때 그 포기되는 아까운 것들을 하나로 뭉쳐 부를 수 있는 좋은 말을 찾고 있었나 보다. 오랜 시간을 써서 직접 빵 굽기, 고양이와 보내는 시간, 친구들과 바보짓하고 아무 말하며 놀기, 개미 관찰하기, 게임하기 같이 돈 벌어먹고살거나 그런 능력을 키우거나 하는 데 도움은 안되지만 엄청나게 멋진 그것들 말이다. 나는 인생의 풍미를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되게 강한 인간인데, 회사 일에 시간과 체력을 너무 써버려서 즐길 시간이 없는 게 늘 불만인 상태다. 그렇다면 영향력은 좀 포기할 수 있나? 잘 모르겠다. 그래도 30% 정도는 추구하고 싶다. 얕보여도 되는 사람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니까. 그래서 대충 7:3의 비율로 인생의 풍미추구형 인간에 치우친 인간이라고 날 정리해 봤다. 살아가면서 맞는지 틀린 지 또 생각하면 되니까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내 장점도 발견했다. 물론 그 옆에 착 붙어있어 나를 대단하지는 못하게 만드는 단점도. 내 장점은 진실된 내 모습, 가령 먹는 걸 밝힌다든지, 놀라울 만큼 무식한 분야가 많다든지, 앞뒤가 안 맞는 점이라든지 이런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따라서 솔직할 수 있다. 그런 점이 때론 상대를 당혹스럽게 하는 때도 있지만 이런 태도는 기본적으로 날 배움에 대해 열려있게 유지시켜 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모자란 점을 인정해야 배우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고 하는 거지. 그리고 여기에 추가로 배울 의지가 꽤 있단 점도 장점 같다. 단점은 이제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자니 너무나 인생의 풍미들이 날 유혹하고 게으름 피우고 느릿느릿 행동하며 쉬는 것이 좋다는 거. ( ᵕ̩̩ㅅᵕ̩̩ )

 

그래도 그동안 효율적으로 일을 해서 조금만 일하고 많이 놀고 싶은 내가 노오력 안 하는 밀레니얼 스레긴 줄 알았는데 내가 추구하는 것이 인생의 풍미란 적절하고 멋진 단어로 대표됨을 알았기에 그것 만으로 이 책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