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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주말이 너무 좋다

콘서트 보러 갈 때마다 프로세코 한 잔 씩 마시는 즐거움

이번 주말은 결혼기념일이 끼인 주간이라 콘서트를 봤다. 사실 결혼기념일과 관계없이 오래전에 예매한 만하임필의 정기 공연 중 하나다. 앨범 재킷으로만 만나던 클래식 뮤지션의 공연을 큰 노력과 비용 없이 볼 수 있다는 게 이곳에 사는 장점 중 하나다. 마리아 호앙 피레즈는 굉장히 자그마한 분이셨다. 또랑또랑 야무진 피아노음이 밝고 희망에 찬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화려하게 채웠다. 같이 호흡을 맞춘 이도 바르-샤이는 이스라엘 출신 피아니스트인데 꽤 젊고 엄청나게 다른 질감으로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 소리가 기름지다 느낀 건 처음인 것 같아. 과연 피아노가 둘이니까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화려함이 있었다. 초여름의 프로그램들이라 다 화사하고 활기찼다. 첫 프로그램이었던 프로코피에프 심포니 1번이 특히 재밌었다. 되게 로맨틱하고 기교가 넘치는 즐거운 곡. 1악장이 특히 아름답고 즐거웠다.

Sergej Prokofjew: 1. Sinfonie, Frankfurt Radio Symphony ∙ François Leleux

이번 주말은 이렇게 정해진 이벤트가 있었기에 나머지 시간은 편안하고 풍요롭게 집에서 보냈다. 나는 집에서 홀로(+ 나그네, 고양이들과) 보내는 것이 가장 좋다. 심심한듯한 비는 시간이 꼭 있어야만 한다. 심심해야만 비로소 시간과 체력의 여유가 없어서 미뤄둔 집안일이나 생각, 계획, 상상을 할 수 있다. 너무 연달아서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거나 자기계발에 몰두하면 소모되는 느낌만 드는데, 한가한 주말을 보내고 나니 비로소 좀 충전이 된 듯한 느낌이다. 사실 지난 목요일이 공휴일이었어서 친구도 즉흥적으로 만났고, 비어가르텐 가서 맥주 두어 잔 하며 사람들 속에 있었어서 더더욱 이번주 분량의 사회적 활동을 다 끝내둔 기분이라 주말을 고요하게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을 만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한계점이 극명한 것은, 내향성과 외향성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내가 까다롭고 예민한 인간이어서도 그렇다. 게다가 까다롭고 예민함을 타인이 쉽게 눈치채지 않았으면 해서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기 때문에 피곤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할 만한 사람은 손에 꼽힐만하기에. 그래서 11주년, 이제 12년 차에 접어드는 우리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마일스톤이 의미가 컸다.

 

공연 중 인터미션 시간에 문득 우리 둘의 손금을 보게 되었는데 되게 비슷하더라. 커다란 엠자가 손바닥 가득 그려져 있었다. 나도 꽤 눈에 띄는 운명선을 가지고 있는데 나그네도 처음엔 거의 없던 운명선이 점점 진해지다 못해 이제는 나보다 진해졌다. ㅋㅋㅋㅋ 손금의 원리나 의미 같은거 잘 모르지만 그냥 신기하다. 아무래도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환경을 만들어가며 살아가니까 비슷해지는 거겠지.

그보다 좀 더 와닿는 싱크로는 둘 다 비슷한 곳에 굳은살이 생겼다는 점이다. 바로 바벨을 쥐는 부분. 9개월차에 접어드는 두 초보 헬스인의 꾸준함의 증거라서 기분 좋다. 운동처럼 일상도 삶도 평소에는 지겹고 심심한 시간으로 차있다. 똑같이 반복되는 루틴을 성실히 수행하고 시간이 많이 지나야 만 프로그레스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헬스와 삶의 공통점 같다. 그걸 혼자 했으면 좀 더 지루했을 것 같고,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서 성실함을 포기하는 날도 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동료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이제 다음 주말도, 다다음 주말도, 그 다음 주말도, 약속이 있다. 당분간 한가로운 주말은 즐길 수 없다. 벌써 아쉽다. 젤다는 언제 하나. 오늘은 운동 다녀와서 진도 좀 나가 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