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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올 해는 정말 많은 실패를 했다

망했지만 어딘가 불심이 느껴지는 라떼아트

그래서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우울감에 빠져있던 올초까지와는 달리 못하는 많은 것에 도전했고,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실패)를 통해 많이 배웠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반복함을 통해서 배운 점이 많다.

 

첫 번째는 어떤 시도를 한 번에 성공하면 배우는 게 너무 적다는 것이다. 실패를 하면 한 번 더 시도할 이유가 생기고, 다음 시도는 더 괜찮길 바라니까 지난 과정을 분석하게 된다. 실제로 사워도우 빵 같은 경우는 여태껏 네 번의 실패를 거치는 동안 점점 나은 결과물이 되어왔다. 지금 다섯 번째 반죽을 하고 있는데 이 것도 완전한 성공은 어렵겠지만 지난 네 번째보다는 분명 나아져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되게 어려웠던 라미네이팅이나 프리쉐이핑 기술이 많이 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기술은 분명히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

 

두 번째 배운 점은 동양에서만 쓰이는지 잘 모르겠는 '칠전팔기'라는 말 너무 성급하다. 고작 8번 시도해서 성공한다면 진짜 잘하는 사람이 아닐까? 나는 올해 4월 정도부터 10월까지 이직을 위해 되게 많은 회사에 지원하고, 많은 곳과 면접을 봤다. 최종까지 간 곳도 몇 군데 있었고, 대부분은 포트폴리오 리뷰 후 떨어졌다. 서류에서 광탈한 곳은 셀 수도 없다. 포트폴리오 리뷰 후에 불합격 통지를 받으면 그 실망과 충격이 어마어마한데, 아무래도 내가 만든 작품과 스토리텔링, 나아가 내 디자인 실력과 경력까지 깡그리 안 좋게 평가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찬찬히 생각하고 분석해보면 매번 시도마다 아 이 부분은 너무 못했다, 다음에 보완해야지 하는 발견점이 굉장히 많았고, 덕분에 매번 더 나은 인터뷰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실패의 쓴맛에 허우적대며 이틀정도는 누워있어야 그 감정소모로 쓴 에너지가 물리적으로 회복이 된다. 러시아의 전쟁 발발 이후 시장이 엄청 위축되고 있고, 내 경력이나 커리어패스가 이직에 쉬운 타이밍이 아니란 것은 안다. 그런 주제에 이상도 높다. 하지만 앞으로도 상황이 쉬워진다는 보장 또한 없기 때문에 그냥 실패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칠전팔기는 너무나, 너무나, 낮은 기준이다. 칠십칠전칠십팔기 정도는 되어야 '아, 내가 쓰레기라서가 아니라 아직 충분히 도전하지 않아서 그래. 그래도 62번 정도 더 도전해 봐야지'라고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세 번째 배운 점은 마스터리로 가는 길은 길고 흥미로우니 그 과정을 게임처럼 즐기는 수밖에 없다. 뭐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여러 번 시도하는 과정에서 처음엔 어려웠던 것들이 조금씩 쉬워지고, 몇 가지 기본적인 스킬이 생기고 나서야 보이지 않던 다음 관문이 눈에 보인다. 물론 게임이나 인생을 통해 원래 알고 있었던 부분이기는 한데, 한동안 연습했던 스케이트 보드며 최근에 푹 빠진 사워도우 베이킹이나 라테아트 같은 경우 말 그대로 신체를 움직이는 스킬이 먼저 몸에 익어야 하는데, 그걸 연습해서 조금 잘하게 된 뒤에야 도달할 수 있는 결과물의 레벨이 있고, 거기에서부터 비로소 다른 불만족스러운 부분에 대한 원인을 분석할 수 있게 되더라. 너무 기본기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여유가 없어서 고차원의 것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다음 레벨로 가게 되면 또 다른 관문이 있겠지. 그런 이유로 최근에 여러 가지 툴을 사고 있다. 주물냄비와 라테피쳐를 구입했고, 장인이 되려면 일단 제대로 된 도구부터 있어야 한다는 또 다른 작은 배움을 얻었다.

 

네 번째는 유튜브로 배우는 것은 독학이 맞았다는 것이다. 사실 전에는 조금 의아했다. '유튜브로 포환 던지기를 독학한 청년이 올림픽에 출전' 같은 것을 보고서, 어쨌든 누군가의 가르침을 비대면으로 받은 것인데 그것이 독학인가? 유투부에는 엄청 훌륭한 스승도 많고 무슨 선의에서 비롯되었는진 몰라도 굉장히 자세히 알려주는 콘텐츠가 많은데?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 늘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자잘한 생활기술들에 대해 배우면서 느꼈는데, 유튜브로 배우는 건 완전한 독학이었다. 일단 누군가 짜준 커리큘럼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이상향과 목표를 스스로 정해서 필요한 정보를 액티브하게 찾아야 한다. 게다가 사람마다 설명하는 내용과 강조를 두는 점, 그리고 설명 스타일이 너무나 다르다 보니까, 결과적으로 영상을 여러 개 봐야만 거기서 조각조각 정보를 수집, 통합적으로 스스로 소화를 시킬 수 있게 된다. 베이킹의 경우 과학적으로 연구도 많이 되어 있고 책으로 찾기 쉬운 분야라서 최근에는 책을 좀 더 의지하고 있다. 필요한 정보를 눈으로 빠르게 스킴해서 얻기 때문에 유튜브보다 책으로 배우는 편이 빠른 면도 있다는 것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런데 둘 다 보는 편이 역시 좋다. 성공의 증거가 눈으로 볼 수 있을 때는 영상을 보고 배우는 편이 단박에 이해가 되니까.

 

아 그리고 비교적 성공적으로 레벨업중인 것도 있다. 바로 10월에 시작한 근력운동. 이건 나그네와 같이 하고 있어서 더 잘하고 있는 것 같다. 비슷한 수준에서 서로 깨달은 점을 나누며 배우는 것도 재밌고, 한 명이 포기하고 싶을 때 다른 한 명이 멱살 잡고 끌고 갈 수 있어서 좋다. 특히 너무 오래 쉬면 어려워지는 부분이라 지금까지 주 3-4회 운동가기를 성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둘에겐 커다란 성취다.

 

올 해의 대부분을 남에게 평가받는 것에 신경쓰며 사느라 피곤했는데 연말에는 스스로를 평가해야 하는 자잘한 취미들이 생겨서 즐겁다. 좀만 더 쉬다가 내년부터는 다시 남의 평가도 잘 받도록 궁리를 해 봐야지. 뭐 배운 게 많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