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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루틴의 재설정

사는 환경이 바뀌었고, 새로 발견하게 된 나의 습성 때문에 삶의 루틴을 재설정하고 있다.

청소 루틴

월요일

음쓰(음식물 쓰레기) 처리하는 방식을 바꿨는데, 보카시 빈을 이용해서 음쓰를 모아 퇴비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생각보다 음쓰가 많이 나오지 않아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음쓰통 안의 것을 보카시 빈으로 옮긴다. 주말 동안에 요리를 많이 하는 편이니까 주로 월요일에 비우고 있다. 보카시 빈에 음쓰를 담고 꾹꾹 눌러서 공기를 최대한 뺀 다음에 보카시 브랜을 흩뿌려주고 뚜껑만 꼭 닫아두면 된다. 날이 덥지 않아서 주로 원두 찌꺼기인 우리 집 음쓰통 냄새도 지독하지 않고, 생각보다 더 좋은 시스템인 것 같다. 보카시빈에서 나오는 액비는 오늘 한 번 물과 희석해서 장미 쪽 땅에 줘봤다. 평소에는 그냥 하수구 배관 청소가 된다는 말에 변기나 싱크로 흘려보낸다.

 

화요일~목요일

주중에는 세탁 거리가 많이 나와서 이틀에 한 번 정도 세탁기를 돌리고, 로봇청소기를 이용해서 바닥청소만 매일 한다. 주방은 쓰고 나서 바로바로 청소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겉보기에 더럽지는 않지만 미처 손이 안 닿는 냉장고 속, 팬트리장 속 청소 주기를 앞으로 계획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금요일

화장실은 원래는 매일매일 닦아서 반짝반짝하게 쓰고 싶지만 평일 40시간 근무를 하면서는 도저히 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석회 제거와 함께 표면을 닦아주는 청소를 하고 있다. 주로 한가한 편인 금요일 오전에 한다.

 

주말

이사 후 구입한 로봇청소기 덕분에 크게 힘들이지 않고 매일매일 깨끗한 바닥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머리카락과 고양이 털, 옷이나 이불에서 떨어지는 먼지들로 인해 매일 청소기를 돌려도 매일 절반쯤 찬 먼지통과 진한 회색이 된 걸레 두 장의 수확물이 나온다. 일요일은 청소기에게 하루 휴가를 주는데 그동안 헤파필터를 청소해서 말려둔다.

원래는 계단청소도 매일 했는데, 짐 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고, 매일 1층과 2층 바닥청소를 하다 보니 계단도 딱히 더러워지지 않아서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만 하고 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청소를 하면 계단 난간 구석구석 살포시 얹어진 고양이 털을 보며 기함하게 된다. 털들은 정말이지 못 가는 곳이 없구나.

 

매일의 청소 일정을 따라가다 보면 금요일과 월요일이 가장 바쁘다.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하거나 주말을 준비하는 작업을 조금씩 더 해야 해서 그렇다. 이렇게 주간 루틴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산책/운동 루틴

어제 청소 루틴에 대해서 쓰고, 산책/운동 루틴을 쓰기 직전에 저녁 7시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 후 산책을 다녀왔다. 그러고 나서 저녁을 해 먹고 치우니 피로해져서 글쓰기는 그만뒀다. 여기서부터는 다음날 오전에 쓰고 있다. 산책은 일몰시간을 체크해서 10분에서 20분 전에 나간다. 최근에는 저녁 7시 10분 경이 일몰 시간대여서 7시 전에 나가려고 하고 있다. 그날 그날 걷고 싶은 거리가 다르고, 저녁에 따로 할 일이 있으면 산책을 짧게 끝내야 할 때도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 걷고 싶은 만큼 걷고 오면 보통 45분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일몰 때 산책을 하는 이유는 하늘의 색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일출 쯔음에도 그런 하늘을 볼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침형 인간과 거리가 멀다. 조금 진부한 표현이지만 한 편의 서사를 보는 듯 하늘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진다. 이 기분에 중독이 되었는지 매일매일 일몰 시각을 체크하고 나가고 있다. 이렇게 자진해서 집 밖으로 기어나가는 경우는 나에게 매우 드문 일이다. 이사 온 곳은 감격스럽게도 집 앞 바로 길 건너에 커다란 와인 밭과 콜라비 밭(이라고 추측 중)이 펼쳐져있다. 살짝 언덕진 곳에 와인을 키우기 때문에 낮은 언덕을 올라가면 탁 트인 정경과 함께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무엇보다 시야의 75% 정도는 하늘이고 그걸 막는 것은 아주 멀리 보이는 숲의 키 큰 나무와 풍력발전용 터빈 정도다. 360도로 뱅글뱅글 돌아봐도 온통 하늘이다. 일몰 때의 하늘은 360도가 다 완전히 다른 스펙트럼의 색을 가지고 있다.

 

일몰즈음의 산책로 풍경

 

운동은 최근에는 많이 하지 않는데, 저녁에 따로 하고 싶은 일이 없을 때는 자기 전에 간단히 요가나 살짝 땀을 흘릴 수 있는 맨몸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운동을 별로 안 해서 그런지 최근에 스쾃 200개를 했을 뿐인데 온몸이 떨려서 이어지는 플랭크를 제대로 못하는 경험을 했다. 내 운동의 목적은 언제까지나 근지구력을 유지하는 것인데 약간 위기감이 느껴졌다. 월요일부터는 양조장에서 면조와 함께 일하는 분이 진행하는 크로스핏 동호회에 나가보려고 한다. 매주 월요일 저녁에 한 시간 정도 다 같이 크로스핏 훈련을 하는 건데, 힘든 운동이라 혼자서는 절대 할 일이 없을 것 같고, 평일 체력 단련의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아서 가고 싶다고 했다. 이후로는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일단 낙장불입 효과를 위해 체육관용 운동화를 하나 샀다.

아침/일과 후 루틴

여러 사람의 브이로그를 통해 그들의 아침/일과 후 루틴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들 참 부지런하게 산다. 내가 사는 것도 막상 영상을 찍어서 편집해두면 부지런해 보일까? 모르겠다. 일단 나는 늦게 일어난다. 그렇게 늦게 자는 것도 아닌데 그냥 잠을 많이 잔다. 그래서 일어나서 일 시작 전까지 시간이 별로 없다.

 

나는 눈을 떠서 침대에서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노르망디가 아침마다 나를 깨우러 오는데, 주로 자기 밥그릇이 비어있다고 항의하러 오는 것이다. 삐용대는 녀석을 잡아서 부들부들한 목덜미를 쓰다듬고 주무르고 하다 보면 삼십 분쯤은 훅 지나간다. 이불속에서 몸을 더 덥히고, 무시무시한 침대 밖 세상으로 나갈 마음의 준비가 되면 나온다. 화장실에 갔다가 손을 씻으면서 가글을 하고, 이갈이 보호용 보조기를 빼서 씻어 보관한다. 나이가 많이 들면 이런 보조기 대신에 틀니를 꺼내서 끼게 되려나? 아무튼 아침 루틴에 치아 관리가 포함되어 있으니 격한 트랜지션을 겪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물을 한 잔 마시고, 옷을 갈아입고, 양말을 신고, 빨래 거리가 모여있는 주머니와 빈 물병을 들고 지하로 내려간다. 지하에 있는 세탁실에 빨래 거리들을 분리해 던져두고, 쌓여있는 탄산수 짝에 빈 병을 넣고 새로운 병을 들고 올라온다. 일층에서 커피나 차를 만들어서 다른 손에 들고, 2층으로 다시 올라와서 업무를 시작한다.

 

늦은 오후가 되어 일이 다 끝나면 저녁을 먼저 먹을지 산책을 먼저 할지 고민하다가 대부분의 날은 산책을 먼저 하게 된다. 낮동안은 은은하게 계속 바쁘므로 저녁이 되어서야 쌀을 씻어 밥을 짓는 경우가 많은데, 취사가 되는 시간 동안 나가서 걷다 오면 딱 맞기 때문이다. 산책을 다녀와서 독일인 기준으로는 늦은, 서유럽인 기준으로는 이른 저녁을 먹는다. 대충 8시쯤 먹는다는 소리다. 밥 먹고 치우고 나면 사실 시간이 많이 없다. 고양이들이 밤동안 먹을 것을 챙겨두고서 올라와서 운동을 하고 샤워하고 자거나, 운동 대신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간단히 씻고 잔다. 평일에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하면 다음날 지장이 있다. 이사 와서는 한동안 운동이나 콘텐츠 감상 대신에 집 정리와 온라인 쇼핑 및 리서치를 했다. 덕분에 내내 피로가 가시질 않았다.

 


 

써두고 보니 얼마 전에 읽은 공선옥 소설가의 책 '춥고 더운 우리 집'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하루를 살다 보면 일상은 치우기(청소하기, 정리하기)의 연속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식 먹고 나서 치우기, 입었던 옷 빨래해서 개켜서 정리하기, 잃다가 아무 자리에나 뒀던 책 제자리에 갖다 놓기, 썼던 물건 그렇게 하기······. 인생이 별것이 아니다. 어지른 것 계속 정리하기의 반복이다.

정말이지 그렇다. 내 한 몸과 그 몸이 머무는 곳을 끊임없이 청소하고 정리해야 한다. 예술과 성공에 대한 야망이 있을 때는 간과했던 것들이다. 어지르는 사람(나)이 따로 있었고, 치우는 사람(엄마, 외할머니)이 따로 있었다. 정말 큰 신세를 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