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운전하기를 싫어한다. 하지만 싫다고 단순히 이야기할 수는 없다. 덕분에 지옥 같은 대중교통을 매일 타지 않아도 되고, 겨울에는 의자 열선이, 여름에는 에어컨이 날씨에 맞서 쾌적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운전 경력이 이제는 제법 되는데도 여전히 도로는 무섭고 내 실수나 다른 차들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 날씨가 안 좋기라도 하면 (독일 겨울은 날씨가 좋은 날이 손에 꼽으니 요즘은 거의 매일) 두배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한 시간씩 운전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한 시간 동안 팟캐스트를 듣는데 그건 또 너무 좋다. 운전할 때가 아니면 이렇게 남의 이야기에 한 시간씩 귀를 기울여 경청할 타이밍이 별로 없다. 많이 배우는 시간이다. 또한 운전은 어렵고 무섭지만 그래도 그로 인해 여기저기 갈 수 있다는 점은 역시 궁극적인 장점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보고 운전하는 걸 좋아하는지 물으면 좋은지 싫은지 결정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해야만 한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독일에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한국과 달리 내가 선택해서 살기로 결정한 곳이다. 물론 어떤 시점부터는 한국에서의 삶도 내가 (계속) 살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살아왔던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선택에는 보다 많은 불가항력적인 이유가 포함되어 있었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곳을 무작정 선호로 고른 것은 아니다. 경제 상황과 인프라, 사회 시스템등 많은 것을 따져보고 여기서 공부를 하고 졸업 후 일도 하기로 결정했다. 따져보는 중에 우선순위에 따라 포기할 것은 포기했어서 이 나라와 새 삶의 터전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처음 1년간은 많이 힘들었고 그래서 독일이 싫어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때보다는 좋아졌다. 더 오래 이 곳에 살수록 좋은 점도 더 많이 알아갈 테고, 한편으로는 싫고 잘 안 맞는 점도 많이 배울 것이다. 단순히 싫거나 좋다는 방향으로 나를 포지셔닝할 수는 없다. 어쨌든 계속 이 곳에서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꽤 오랫동안 살아가야 한다. 감사하게도 많은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1 세계 국가이니까 많은 부분이 세세하게 고려되어 시스템으로 디자인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갖게 되는 불만의 많은 부분은 그 배경을 이해하고 나면 해소가 되기도 한다. 자꾸자꾸 호기심을 가지고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 보면서 스스로를 달래며 살아가고 있다. 좋은 훈련 같다.
지금 다니는 회사와 일도 그렇다. 일 자체는 보람이 크지 않은 일이다. 회사와 파트너쉽을 체결해서 사업을 하는 파트너사와 그곳 직원들이 일 할 때 사용하는 지식포털의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고 운영하는 일을 한다. 파트너만 로그인할 수 있는 폐쇄적인 서비스이기 때문에 큰 임팩트를 원하는 나에겐 조금 맥이 풀리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유저수는 많다. 이 팀 또한 대기업의 특성상 정치질을 위한 비즈니스 의사결정이 많은 편이고 그게 언제나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라서 환멸이 자주 난다. 하지만 매일매일 독일에서 마주하고 같이 일하는 팀원들이 참 재미있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도 나를 좋아하며 챙겨주고, 내 농담에 하루 종일 웃고 하는 점이 좋다. 어딜 가서 이런 사람들과 다시 일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일 자체, 집에서 사무실까지의 거리, 미국 쪽 팀원들 그리고 매니저... 일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많은 부분에 불만이 많다. 지금 내 직업과 일을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럼 나는 이 좋은 일을 싫어하는 걸까? 아마도. 좋아하는 걸까? 아마도. 하지만 어쨌든 계약기간까지, 다다음 분기까지, 내가 시작한 프로젝트의 결과를 볼 때까지, 어쨌든 내가 선택해서 나가기로 하는 그 날까지 다녀야 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무조건적으로 좋아한다고만 할 수 있는건 고양이뿐인 것 같다. 잠자는 거랑. 맛있는 거 먹는 거랑. 좋아하는 것만 하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더 나아가서 해야 하는 일을 무조건 좋아하도록 노력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아무튼 내가 현 상태를 만족하고 있지 않는다는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언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 시기를 어떤 기준으로 세워야 하는 걸까? 일단 더 좋아지는 게 생겼기 때문에 무브온 하는 것은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대게 새로운 대상에 대해서 정보가 많이 없을 때 좋은 점 먼저 순서대로 배우게 되는 편이니까, 한정된 정보를 바탕으로 마음의 결정을 내려버리고서 장단점을 다 알고 견뎌온 지금의 대상을 때려치기엔 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엄청나게 분석력이 좋지도 않아서 빨리빨리 정보를 모아 취합해서 분석 한 뒤 어떤 게 장기적으로 나에게 더 맞을지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타당할지 신뢰할 수 없다.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다. 아마 계시처럼 내 직관이 보내는 신호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가진 운이 발동해서 자연스러워 보이는 연결점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일단은 존버 하면서 그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좀 답답하고 힘든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