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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감기랑 싸워 이기자

하이쭝 옆 고양이들과 내 발. 상석은 역시 요를이 차지했다.

감기에 걸렸다. 뭐 놀라울 것도 없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약한 감기에 서너 차례 걸리고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센 놈을 앓아주는 게 내 (빌어먹을) 건강 패턴 같다. 올해 마지막으로 아픈 거였으면 좋겠다. 다행히 이럴 때만 찬양하게 되는 갇 유럽 회사의 훌륭한 업무 문화는 나로 하여금 출근을 하지 않고도 딱히 휴가를 쓰지 않고도 쉬면서 이 시기를 보내게 해 주었다. 나는 처음 학생으로 입사하던 때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그냥 우직하고 투명하게 피곤하거나 일 할 마음이 안 들면 못하겠다고 휴가를 쓰거나 했어서 사람들이 이제는 '헤이 미니, 그 정도는 그냥 오피셜 하게 휴가 쓰지 말고 침대에서 푹 쉬어! 급하게 처리할 일 있으면 우리한테 왓츠앱으로 연락 주고.'라고 굳이 마음 쓰는 조언을 해 줘서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스카이프에 내가 온라인으로 떠 있을 때마다 말 걸어서 괜찮냐고 물어봐주고, 일 없으면 랩탑 닫고 어서 누워!!라고 조언도 해줬다. 그리고 독일 답게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공교롭게도 여러 명과 함께하는 약속이 하나 있었는데 취소해야 해서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 건강을 염려하게 만들었다.) 차를 많이 많이 마시라고 조언해줬다. 아니 도대체 너네 평소에 차도 안 마시면서 왜 이렇게 차를 마시라고 하는 거냐. 평소에 건강할 때는 마실 필요 없는 게 차인가? 아무튼 감기 걸릴 때 마시라고 특별히 팔고 있는 차를 마셔봤지만 맛도 없거니와 이 차는 이상하게 마실수록 몸에 힘이 빠지고 건강이 더 나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 번에도 혹시나 싶어서 2잔을 마셔 보기는 했지만 역시나여서 그만뒀다. 대신 한국인이 아플 때는 어쩐지 신토불이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옥수수수염차와 둥굴레차 티백을 티팟에 가득 우려 놓고 계속 마셨다. 커피 중독자가 카페인을 뚝 끊었더니 두통이 심하길래 카페인이 비교적 적다는 우롱차도 한 1리터쯤 마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1리터나 마실 거였으면 그냥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편이 나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날은 너무 아프고 물만 마셔도 구역질이 올라와서 뜨거운 물이나 야금야금 마시며 버텼고, 다음날은 좀 나아져서 뭔가 음식을 먹어서 영양 보충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너무 작아서 먹을 생각이 안 들던 왕대추만 한 사과가 남아 있어서 먹고, 바나나랑 블루베리도 있어서 스무디 해 먹었다. 있는 과일을 먹어치우고 나니 좀 힘이 생겼는지 저녁에는 냉장고 속 재료로 창의력을 발휘해 연성 가능한 떡볶이를 해 먹었다. 다만 배도 고팠고 많이 먹어야 낫는다는 강박관념에 좀 배가 많이 부르게 먹었는데, 그래서 오늘 아침까지 소화가 안되어서 머리가 지끈지끈거렸다. 소화가 잘된다는 요가를 40분 정도 하면서 목 어깨 명치의 긴장을 좀 풀고 늘려놨더니 좀 나아져서, 에라 모르겠다 싶은 마음에 커피를 한 잔 내려마시고 이제 장을 보러 나가야만 한다.

 

혼자 살면서 아프니까 매일 해야 할 집안일도 너무너무 버겁고, 특히 장을 보거나 끼니를 챙겨 먹는게 너무 힘들다. 게다가 깨끗한 상태에서 쉬지 않으면 쉬는 것 같지도 않아서 어제는 꾸역꾸역 청소기를 돌리고 이불도 빨았다. 그 덕분인지 오늘 아침은 코막힘이나 목 아픈 것이 좀 좋아진 것 같다. 평소에도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도맡아 하지만 특히 내가 아플 때는 집안일만큼은 완전히 파업하고도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남편이 해주는 죽 같은 것 먹으면서 회복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이걸 다 내가 해야 하니까 정말 힘들다. 게다가 평소에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던 고양이 밥이랑 물 주고, 밥그릇 물그릇 설거지하고, 화장실 치우는 루틴이 되게 되게 힘겨웠다. 쭈그려 앉아서 화장실 모래를 퍼내고 다시 일어나려니까 주방에 있는 쓰레기통까지 걸어가는 게 겁나 큰 도전처럼 느껴졌다. 건강의 소중함은 잃었을 때 느낄 수 있습니다. 너무 자주 잃어서 잊어버릴 일이 없어서 참 좋네요.

 

오늘 장을 안보면 앞으로가 힘들어지니 어서 옷 갈아입고 나가야지. 원두도 다 떨어져서 무조건 나가야만 한다. 일어나자. 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