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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씨 뿌리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어?

줄리언 반스가 쓴 기가막히게 재미있는 에세이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의 원제는 The pedant in the kitchen이다. Pedant를 한국어로는 현학자라고 번역이 되어 있던데 무슨 뜻인지 잘 몰라서 찾아보니 옥스포드 사전에 의하면 a person who pays more attention to formal rules and book learning than they merit -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게 더 많지도 않을 텐데도 더 지나치게 정해진 규칙이나 이론에 집착하는 사람 - 라고 한다. 그러니까 현학자는 아주 들어맞는 단어는 아니고, 그냥 뭔가에 대해 감각이 너무 부족할 때 적당한 설명으로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사람을 칭하는 단어 같다. 요리를 잘 못하는 사람에게 요리책에서 말하는 '한소끔 끓여준다' 같은 설명은 너무나 불안한 묘사 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어쩔 수 없는 Pedant다. 발코니에서 키울 화분에 씨를 심기로 결심하면서 느꼈다.

 

이번 주말에는 정말 오랜만에 약속이 없어서, (누군가 파티를 주최했지만 휴식을 위해 거절했다.) 미루고 미뤄뒀던 씨뿌리기를 하기로 했다. 토요일에 OBI에 가서 화분과 흙을 사고, 미리 사둔 부추 씨와 흙 사면서 같이 산 시금치, 고수, 바질, 파슬리 씨를 뿌리기로 했다.

 

쇼핑시간은 역대급으로 오래걸렸다. 왜냐하면 도저히 뭘 사면 좋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화분 고르기는 비교적 쉬웠다. 예산 안에서 (화분을 위해 십몇유로나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보기 좋고 발코니 선반에 걸 수 있는 디자인의 화분을 세개 골랐다. 그리고 실내용 화분을 사면서 그 것을 담아 둘 Outer pot들을 샀다. 이 것도 세일코너에서 가장 단순한 디자인을 골랐다.

 

흙을 고를 때 부터 난관이 찾아왔다. 도대체 흙 종류가 왜 이렇게 많은 것인가. 꽃용, 허브용, 텃밭용, 화분용, 대충 내 수준에서 알아 볼 수 있는 기준도 그렇고, 영양분 관련 구분이나 점토(?)질 여부도 있는 것 같고... 아무튼 그냥 '흙 한봉지'를 사면 되는게 아니었다. 내가 산 화분에 들어갈 적당한 양의 흙을 가늠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리고 수많은 브랜드와 각 브랜드마다 나오는 다양한 종류의 제품들 가격이 천차만별이라서 가격으로 고르기도 힘들었다. 초보인데 가장 싸구려 흙을 썼다가는 제대로 키울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렇다고 비싼 흙을 의미도 모르면서 살 수는 없었다. 결국 누군가 뭘 집어가는지를 유심히 본 후 브랜드를 골랐고, 그 중에서 화분용이자 허브용인 흙을 45L 샀다. 45L팩과 함께 둘 중에 고민하던 20L를 사지 않은 이유는 가격 차이가 절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L가 단위당 가격이 훨씬 비쌈)

 

그다음은 씨앗을 골라야 했는데, 아뿔싸. 예를들어 바질을 사고싶은데 (당연하게도) 한 종류만 파는 것이 아니었다. 브랜드도 여럿 있었고, 바질이란 식물 자체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또 같은 종류의 같은 브랜드라도 또 정원용, 화분용이 따로 있었다. 도대체 이 것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사고나서 깨달았는데 화분용은 동그란 화분에 들어갈 수 있게 미리 종이테이프 같은 것에 씨앗이 붙어 포장된 제품이었다. 그러니까 씨앗은 더 적게 들어 있고 더 비쌌다. 편리하긴 했지만 다시 산다면 그냥 정원용을 사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바질은 그냥 sweet basil을 사고 싶었는데 그 것이 다른 종류의 바질과 독일어로 무슨 차이인지 알 수 없고, 사진상으로도 구분 할 수 없어서 결국 그냥 아무 초록색 잎이 그려진 것으로 샀다. 파슬리도, 시금치도 다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혹여나 내가 했을 잘못된 선택에 불안함이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다 샀다고 해서 끝난건 아니고, 이제 흙을 얼마나 부어야 할 지, 얼마나 깊이 구멍을 내고 심어야 할지 알아내기 위해 검색을 많이 해 보았다. 그런데 딱히 건질만한 정보가 없었다. 그런걸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가장 정확한 것이 독일어로 된 씨앗 패키지의 정보였다. (예: 8센치 정도 흙을 채운 뒤 씨앗을 흩뿌린다.) 유투버들이나 한국 블로거들은 단순히 순서만 나열 할 뿐 각 순서에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디테일이 없었다. 씨앗은 얼마나 많은 양을 흩뿌려야 하는지, 씨앗마다 얼마만의 퍼스널 스페이스가 있어야 하는지, 덮는 흙은 몇센치가 이상적인지, 살짝 눌러줘야 하는지 최대한 안 누르고 평평하게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그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다.

 

사실 심는 것은 그래도 영상으로 순서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보면, 이후 싹이 틀 때까지 물은 얼마나 많은 양을 얼마나 자주 줘야 하는지도 알려주는 사람은 정말정말 소수고, 그나마도 각자 표현법이 다르다. '마르지 않게'라는 표현을 가장 많이 봤는데, 도무지 누구 시점에서 마르지 않게 라는건지 모르겠다. 씨앗 시점인지, 겉 흙 시점인지, 속 흙 시점인지, 아니면 화분 전체 시점인지, 주변 대기 시점인지 알 수 없다. 태국 사람이 알려주는 팁은 과연 건조한 독일 여름에서 쓸 수 있는 팁인지도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한번 흠뻑 물을 주고 나면 다음날 쨍쨍한 해를 하루종일 받아 겉 흙이 살짝 마르는 이 곳의 요즘 날씨에 따라 싹이 틀 때까지 그냥 매일 저녁 물을 너무 많지 않게 주려고 한다.

 

싹이 나는 것도 2주정도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니 아마도 휴가 다녀 올 때 쯤에야 그 기쁨을 맛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휴가 간 동안 마르지 않게 누군가에게 물 주는 것을 부탁하고 가야 할 것이다.

 

정말 식물은 어려운 취미이고,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며, 나는 일반적인 어른 중에서도 특히나 식물에 대한 지식이 없는 편에 속한다는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