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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대자연 바라보며 2박 3일

알프스 산맥의 만년설 봉우리를 바라보며 테라스에서 커피 두 잔

오잉? 내가 이렇게나 산을 좋아했었단 말인가? 라는 의문이 들 만큼 오랜만에 산을 실컷 봐서 기뻤다. 비교적 짧은 롱위켄 휴가였지만 마음과 정신과 허파를 조금 청소하고 온 듯 하다. 해변가에 지저분한 것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을 때, 파도가 한 번 싹 들어왔다 나가면서 몇가지를 가져가고, 그렇게 여러번 왔다 갔다 하며 결국 해변을 자정한다. 그 것처럼 눈 앞에 푸른 침옆수림을 보고, 바람에 나무가 조용히 흔들리는걸 보고, 조금 멀리 눈을 돌려 눈 쌓인 봉우리를 보고, 구름이 숲을 훑고 지나가는걸 보고, 언덕에서 소와 염소가 느릿느릿 걸어다니며 풀 뜯는 것을 보다보면 그런 자정작용이 천천히 진행된다. 그렇게 폐와, 마음과 정신이 청소되는 기분이 든다.

 

첫 날은 독일 남부의 커다란 호수를 낀 작은 도시에서 천국같은 풍경을 보며 잠시 쉬다가 왔고, 그 동네에서 발견한 끝내주게 크고 좋은 슈퍼마켓에서 장봐온 것으로 스파게티를 해먹었다. 있는 것 만으로 창의력을 발휘해서 만든 것인데 되게 맛있었다. 뭐 저런 풍경을 보고 먹으면 뭔들 잘 안넘어가겠어.

 

둘째날은 이번 여행의 메인 테마였던 등산을 했다. 이 날을 위해 난생 처음으로 등산화도 샀다. 사실 쉽게 걸어만 다닐 수도 있는 길을 갈 수는 있었는데, 등산화 산 것이 아까워서 결국 등반도 조금 했다. 그리고 덕분에 도저히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이라 믿기 힘든 풍경을 많이 보고 왔다. 6월 초는 해발 2000미터 위의 높이에서는 아직 봄의 시작일 뿐이었다. 눈이 녹아서 흘러 작은 천으로 모여 흐르는 과정을 내 발로 밟으며 직접 봤다. 녹은 눈 아래에는 이미 콩나물 같은 귀여운 싹들이 나 있었다. 하얀 꽃도 지천으로 피어 나고 있었다. 겨울에서 봄이 되는 기적같은 순간을 네셔널 지오그래피채널이 아닌 내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되게 감격적이었다.

 

알프스 산맥의 봉우리들은 높고, 컸다. '대자연'이라는 말이 뽝!하고 마음에 다가왔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 경험했던 자연들은 중자연이나 소자연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연의 사이즈도 컸지만, 사람은 아주 작은 미물처럼 느껴질 만큼 주변이 압도적으로 초록색이었다. 이 곳의 주민들은 이상하리만치 인구밀도도, 동물밀도도 현저히 낮은 곳에서 자연속에 파묻혀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들은 깨끗하고, 모던하고, 편리하게 관리되어 있다. 물론 내가 묵은 곳은 비수기의 스키 마을이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 접근성과 인프라를 갖고도 자연을 헤치지 않게 잘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 경이로웠다.

 

등산을 한 것 말고는 한 것이 별로 없다. 저 사진의 테라스에서 앞의 산 레이어들을 바라보며 커피마시고, 컵라면 먹고, 맥주 마시고, ... 한 것이 다 인 듯 하다. 책을 조금 읽었는데, 동네 친구가 빌려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고양이'라는 소설이었다. 첫 장 넘기고 깜짝 놀랐다. 내가 쓰던 '요를레이의 모험'과 너무 흡사한 방식의 글이라서. 좀 빈정이 상해서 조금만 읽다가 관뒀다. 덕분에 할 일 없어서 잠도 일찍 잤고, 일찍 일어났다. 장을 조금 봐 간 덕에 라면 빼고는 거의 건강한 것만 먹었다. 근사한 저녁으로는 직접 조리한 생면 파스타를, 배고프고 당이 떨어질 땐 사과를, 산 위에서는 간편하게 후무스랑 비스킷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목이 마를 땐 맥주를. 히히.

 

아무튼 왕복 거의 10시간 운전 해야 했지만 잘 쉬다 온 느낌이고, 집에 와서 '아 우리집이 역시 최고야'라는 생각 대신에 '아 숲 또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되게 드문 경험을 했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와 내 식물/작물 친구들과 살아가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