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1년간은 완전 미니멀리스트들도 혀를 찰 만큼 아무 것도 없이 살았다. 큰 침실에는 큰 침대가 하나 덜렁 있었고, 고양이 화장실 하나가 전부였다. 전 주인이 팔고 간 요란한 등이 달려 있어서 그나마 덜 텅 비어 보이게 했다. 거실에는 고양이 스크레칭 타워 하나와 큰 식탁겸 책상을 먼저 샀다. 전부터 튼튼하고 오래가는 큰 테이블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막상 가진 지금은, 구지 꼭 필요했던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보기에 좋으니 됐다. 다만 다음에 이사를 가게 된다면 거실이 좀 큰 집이 아니면 곤란 할 것 같다. 테이블을 산 동네 가구제작소에서 작은 쇼파도 하나 샀는데, 당시에 고양이들이 거기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통에 사람이 앉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테이블에 어울리는 식탁 의자와 벤치도 샀고, 그 벤치는 그 다음에 산 쇼파베드 옆에서 거의 테이블로 기능하고 있다. 지금은 곳곳에 필요한 가구가 거의 다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요즈음에 다시 월급쟁이가 되어서 그런지 뭔가 자꾸 사고 싶어진다. 지난 몇 년간 미니멀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수입이 없고, 공부하느라 나름 바빴기 때문이었나.
그간 인테리어 디자인이라고 구지 칭할만한 것이 없이 살았는데, 하나 둘 새로운 가구가 들어오면서, 식물을 키우고 싶어지면서 좀 공간디자인에 신경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든다. 그러다보니 마음속에서 사고싶다고 생각하는 리스트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것들을 모두 살 수는 당연히 없고, 있으면 좋을지 말지도 아직 모른다. 돈걱정이 되는 날은 DIY 천재들의 사진이나 영상을 구경하고, 월급날이 가까울 때는 가구점 사이트에서 아이쇼핑을 한다. 사람마다 킬링 타임을 위한 다양한 놀이거리가 있지만 최근의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러느라 써버린다.
그 와중에 고민에 고민을 거쳐 장바구니 리스트를 다 제거해 버리고, 필요와 호기심에 의해 새로운 커피 드리퍼를 하나 사 봤다. 유럽에서는 아마 가장 널리 쓰이는 하리오의 V60. 이건 주방용품 중에서도 커피 용품이라는 작은 카테고리 안에 드는 물건이지만 그래도 하나 산 덕에 뭔가 지르고 싶은 욕구가 조금 해소되었다. 이걸 산 이유는 순전히 현재 잘 쓰고 있는 오래된 칼리타 드리퍼에 끼울 종이 필터를 다 썼는데, 새로 사려니까 일본에서 직배송 하는 것만 살 수 있고, 여기에서 사려면 가격이 꽤 비싸기 때문이다. 종이필터 1.5개를 살 수 있는 돈으로 드리퍼를 하나 살 수 있어서, 종이 필터도 비교적 구하기 쉬운 장점이 있는 V60를 사보자고 생각했다.
예전에도 이 고민을 했었는지 나는 이미 칼리타와 V60의 차이점에 대해 제법 많이 알고 있는데, 막상 직접 칼리타로 내려 마시던 원두를 V60로 내려보니 과연 그 차이를 맛 볼 수 있어서 재밌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널리 쓰이는 만큼 로스터리 카페에 가서 핸드드립을 시키면 보통 이걸로 내려주는데, 전문점 맛과 내가 내린 맛의 차이점도 생각 해 볼 수 있어서 또 재미 포인트가 추가되었다.
나도 그렇고 남편도 물건을 하나 사기가 쉽지 않은데, 마음에 꼭 드는 좋은 품질과 디자인의 물건을 찾기도 사실 쉽지 않고, 충동구매는 별로 안하는데다가 정말 꼭 필요한 시기를 또 기다리는 경향도 있다. 그에 반해 경험에는 돈을 좀 쉽게 쓰기는 하는데 그래서 또 물질적인 것에 쓸 돈이 부족한지도 모른다. 지금 내 마음속의 집 업그레이드 로드맵은 대충 다음과 같다. (곧 업무를 시작해야 하니 말투가 바뀐다!)
식물과 함께 살기 | 자동화 | 커피 취미 업그레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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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는 알 수 없지만 내 행동 패턴을 봤을 때 먼저 꼼꼼히 지출 계획을 세우고, 머릿속에 구도가 완전히 완성이 되고 나면 구매를 시작 할 것이다. 아마 한 3년 플랜정도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