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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단기 목표

현재의 나는 단기 목표만 가진 삶을 살고 있다. 아무리 길어봐야 5-7년이면 이룰 수 있는 것들. 내가 유럽까지 건너오는 모험을 왜 했었는지 생각해보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좀 더 인정받고, 쉴 권리를 함께 누리며 지속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 왔다. 그런데 이런 목적은 여러가지 단기 목표를 달성 해야 이루어 지니까 나름대로 마일스톤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그 것들을 이루고 나면, 나는 어떤 목적으로 삶의 원동력을 이어 나가야 하는거지?


이런 생각이 문득 든 원인은 트위터에서 본 끔찍한 르포 때문이다. 유기동물을 구조하는 큰 단체가 비공식적인 안락사를 자행하고 있음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한숨이 나오고 마음이 답답해졌다. 난 그런 일에 앞장서서 누구보다 고생하는 사람들을 본 적 있다. 내가 참여했다는 말 조차도 부끄러울 정도로 나는 그냥 그 현장을 지켜 볼 기회가 있었고, 가끔 그 분들의 노고를 덜고자 내 편의를 헤치지 않는 한에서만 후원 및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규모가 그다지 큰 단체도 아니었고, 담당하는 동물은 내가 살던 시자체에 유기된 고양이만이었다. 시 보호소라는 곳은 민원으로 들어온 유기 또는 야생 동물을 열흘동안 보관했다가 안락사를 시키는 곳이었다. 천운을 타고난 녀석은 잃어버렸던 주인을 찾거나, 아니면 paw in hands라는 어플 덕분에 새로운 주인을 만나기도 한다. 내가 일년이 넘게 봉사활동을 하며 접한 그러한 희망적인 케이스는 채 열 건이 되지 않았다. 반면에 매일 매일 유기된 동물들이 들어왔다. 나는 고양이만을 돌봤지만 보호소에는 개가 가장 많았고, 새, 햄스터, 닭(?) 등 각종 반려동물이 버려져 들어왔다. 고양이는 야생 고양이도 단순히 보기 싫다는 민원에 잡혀 들어왔다. 그런 아이들은 사람을 경계하기 때문에 순화가 되지 않는 이상 입양이나 임시보호를 가지도 못한다. 하루에 한마리만 들어와도 일년이면 365마리인데, 당연히 하루에 한마리만 들어오지 않는다. 한국사람들 정말 많이 생명을 버린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봉사자는 끽해야 10명 남짓이었다. 전부 다 생업이 있는 사람들이 시간을 쪼개서 보호소에 들러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하고, 임시보호나 입양 홍보를 위한 게시글을 올리고, 문의오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임시보호나 입양처를 선별하고, 구조된 아이들을 임시보호 봉사자나 입양하는 당사자에게 이동시켜준다. 이 모든 과정이 짧게는 보름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걸린다. 구조된 고양이 한 마리가 새 삶을 살고 봉사자들의 손을 떠나는 과정 말이다. 당연히 구조 할 수 있는 생명의 수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 한계 밖에 있는 아이를 우리는 눈감고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직접 만나고 돌보는 인연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하고, 내 손에 자기 머리를 부비적대고, 청소를 마치고 케이지 문을 닫으려 하면 붙잡고 가지 못하게 그릉대며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조 봉사를 하는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 질 수 밖에 없다. 나는 내 생활을 바칠 용기가 없어서 봉사만 했다. 본격적으로 구조에 가담하기에는 그 책임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모른 척 했다. 병으로, 안락사로, 사고로 죽는 아이들의 소식이 괴로웠고 많이 울었다. 그 중에는 내가 봉사하러 간 날 처음 들어와서, 내가 스스로 이름을 붙여준 아이도 여럿 있었다.


지금은 이 미저러블한 동물권을 위해 내 삶을 바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너무 많은 무력함을 느껴봐서 그렇기도 하고, 사실 이 모든 것은 핑계고 나는 내 일상을 바칠 수 있는 용기가 없고 그정도로 인정이 깊지 않다. 내 고양이들과 내 삶을 안락하게 꾸려나가고 싶은 마음만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의 입신양명이 중요하다.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이세상 등지는 날 까지 먹고 살 경제력이 필요하다. 고양이 둘과 사는 데는 사실 큰 돈이 들지 않는다. 다만 병원을 가거나 해야 할 때 돈 걱정 때문에 망설이지 않을 만큼의 경제력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그 것도 벅차서 그 너머의 단계까지는 고민하지 않고 있나보다. 그런데 그걸 가끔씩 깨달을 때마다 어마어마하게 허무함이 몰려온다. 평생 끌고 갈 책임감이 없는 삶은 허무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식을 낳는걸까.


그래도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허무함이 성취감을 잡아먹는 매일일지라도 작은 변화를 꾸준히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언제까지 그냥 존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왜이렇게 의욕도 에너지도 없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