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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유럽회사 근태

어제 친구들과 사무실에서 좀 멀리 있는 푸드홀에서 (버거, 스파게티, 피자, 커리 부어스드 건강식인 일반 구내식당 음식과 달리 스트릿푸드 컨셉으로 꾸민 컨테이너 공간이 있고, 직원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한국 방문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인의 휴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2주 이상 일을 쉬고 휴가를 가져본게 처음이었어서 3주째에는 은근히 '이러다 일 하던거 다 까먹는거 아냐?', '이렇게 오래 쉬어도 되나?'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이야기 했더니 너 그렇게 전형적인 아시안처럼 살지 말라고 유럽인들이 분노했다. ㅋㅋㅋ 나도 처음 깨달았어. 


그리고 이사 갈 때 하루, 결혼식 할 때 이틀, 뭐 이런 삶의 대소사에 있어서도 추가로 유급 휴가가 나온다고 한다. 결혼도 이사도 앞으로의 계획에 없어서 슬프다.


한국에 살 때는 난 너무나 비 전형적인 한국인이었거든. 다들 나보고 별종이라 하고, 몇 몇 사람들은 나보고 그렇게 살면 나중에 후회한다고 진심으로 조언해주곤 했다. 내가 한국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지적받던 것은 게으름인데, 미팅 약속을 어긴 적은 없지만 평상시 근무할 때 일터에 5-15분씩 자주 지각하는 것, 남 눈치 안보고 휴가를 2주 몰아 쓰는 것(그나마 병가로 며칠 까먹어서 2주 꽉 채우지 못했었음),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머리가 너무 아프면 병가 내고 쉬는 것, 등과 같이 근태에 대한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늘 근태에는 자신이 없었다. 


웃긴 점은 여태 지적받던 사항들이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시에 출근하든 내가 그날 할 일을 끝내고 퇴근 하고 싶을 때 퇴근 하면 되고, 주 40시간 일 하는 것은 서로간의 신뢰에 의한 합의일 뿐 아무도 체크하지 않는다. 몸이 아프면 당연히 병가를 쓰고, 그건 내가 합법적으로 가진 유급휴가에 포함되지 않는다. 3일 이상 쉬어야 할 때는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하다. 휴가를 3주이상씩 가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다들 권장하는 분위기 이다. 연간 6-7주씩 휴가를 가니까 당연히 일년 내내 팀 원 중에 누군가는 휴가에 가 있거나 휴가를 막 다녀왔거나 하는 상태고, 사람들은 일년 내내 휴가 이야기를 한다. 근태에 대한 스트레스가 정말 하나도 없다. 심지어 너무 춥고 눈이 오는 날은 많은 사람들이 출근 안하고 재택근무를 한다. 사무실에 가야 할 다른 이유가 없다면 위험하게 스트레스 받으며 출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목요일 오후에는 퇴근하며 다들 주말 잘보내라고 인사한다. 금요일에 출근하는 사람이 정말 드물기 때문이다. 내가 논문 다 쓸 때까지 3일 중 하루는 재택근무를 하고 싶다고 가장 가깝게 일하는 동료에게 말했더니 그런 것 묻지도 말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는 독일이잖아. 대부분의 세금납부자들이 법적으로 연간 30일의 휴가를 보장받는데도 나라는 잘 돌아가고, 경제는 괜찮다. 사실 우리나라나 다른 동아시아 국들도 가능한 것 아닐까. 성실하다면 독일인에 견주기에 부끄러움이 없고, 내가 보기에 문제 해결력도 스타일이 다를 뿐 뒤지지 않는다. 각 국민 노동 스타일에 장단점이 있지만 우리도 결코 생산력이 떨어질 걱정 없이 이런 문화나 시스템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회사나 몇몇 젊은 세대의 회사가 시도하고 있다니 잘 뿌리내렸으면 좋겠다.


너무 극과 극을 체험하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원래는 유럽 대륙에 사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있었는데, 그래도 긍정적인 부분에서 가장 기대되었던 점은 휴가였다. 어느 여행지를 가든 유럽인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의 여유가 부러웠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유럽에서는 먼 남미 정글이나 아시아로 몇 주씩이나 여행을 하다니 말이다.


현재 남편이 다니는 양조장의 사장님은 큰 회사에서 스스로 결정권은 없이 연봉과 휴가 생각만 하며 퇴근만 기다리는 삶이 싫어서 창업했다고 좀 부정적으로 말했다고 하지만, 그런 삶 살아본 적 없어서 좀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