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하반기에는 여러가지 큰 일들이 있었다. 졸업할 시점을 정했고, 졸업 후 진로를 어느정도 확정했으며 그 선택을 기반으로 차도 살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생활이 많이 바뀌었다. 늦가을 무렵에 자궁쪽에 살짝 문제가 있었었고, 다 나아서는 3주간 한국에 다녀왔고, 다녀와서는 감기로 많이 아팠다.
한국에 있는 동안은 언제나 한국에서는 그래왔던 것 처럼 하루 하루 알차게 보냈다. 몸이 피곤해서 쉬어야 하는 날 조차도 의미있게 보내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나같이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좋았다. 나를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서 멀거나 가까운 곳에서 약속장소까지 찾아와 주었다. 짧은 만남 후 헤어질 때 마다 아쉬웠다. 그래도 내년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국어로 떠는 수다가 그리웠고, 나를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들이 해주는 따뜻한 격려가 절실했다. 독일에서의 성취를 하나같이 축하하고 응원해 주었다. 외국인으로서 평가만 받고 살다가 내리사랑 부둥부둥을 받고 돌아 온 기분이다.
가족. 무엇보다 가족과 만나는 것이 좋았다. 사실 작년까지도 느끼지 못한 감정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너무 마음 속 부담이 컸다. 가족을 떠올리기만 하면 드는 복잡한 감정 중에 죄책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늘 투덜대면서도 내 스스로조차 나 자신을 큰 딸, 큰 며느리라는 역할로만 대했던 것 같다. 그러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특히 아픈 엄마와 엄마를 위해 모든걸 희생하시는 아빠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내가 도와드리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국에 가서 나름대로 도우려고 애를 썼다. 아빠를 도와 김장을 하고, 식사 때마다 돕고, 심부름을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엄마를 챙기고, 부모님과 동해 바다에 다녀왔다. 그래봤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결국은 부모님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설명드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드리면서 우리가 지구상에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공유하는 수 밖에 없었다. 물질적으로는 아직도 부모님께 전혀 힘이 되어 드리질 못한다. 죄송하다는 말도 못했다. 가까스로 감사하다고는 했다. 말 한마디 꺼내놓기가 참 어렵다. 그래도 엄마아빠가 그 자리에 계셔서 다행이다. 힘이 드시겠지만, 당분간 쭉 이랬으면 좋겠다. 엄마 건강이 나아질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고.
면조가 한국에 오는 날에 맞춰 대전에 내려갔다. 일년만에 뵙는 시댁식구들이 참 반가웠다. 우리를 걱정하고 응원해 주셨고,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누구라도 나에게 서운함이나 아쉬움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늘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내가 못 하는 것을 누군가가 다 대신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서로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는 한정된 시간에 그런 감정을 이야기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잘 한 것은 역시 아빠와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것이다. 영화 자체에도 큰 감동을 받았다. 스스로를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넣는 락스타의 삶이라니 멋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 사람이 외국인에, 특별히 빼어난 외모나 능력을 가지지도 않은 누군가였기도 했고, 디자인 전공자였다고도 하고, 그리고 삶에 성공만 있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린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남자주인공 배우에게 엄청 끌렸다. 라미 말렉. 엄청 호소력 있는 눈매를 가졌고, 사려깊게 느껴지는 느긋한 말투가 좋다. 아빠에게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하니 당연하게도 아빠가 눈을 반짝이면서 나도 보고 싶다고 하셔서 몇 번 시간 조율 실패 후에 심야 영화로 보러 가게 되었다. 주말이라 비싸기도 했고 심야여서 약간 피곤했지만 아빠와 이 때 보지 않았으면 정말 정말 후회했을 뻔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보는 내내 덩실대는 어깨춤을 같이 애써 참았고, 다 보고 나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같이 위아더챔피언 멜로디를 흥얼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빠의 20대 시절에 듣던 음악과, 사모았던 퀸 레코드, 그리고 그 레코드들을 큰아버지가 멋대로 처분해버린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아버지한테 아주 화가 났다. 장사를 하시면서 집의 전축과 함께 아빠가 모아둔 레코드 판들을 가져다가 전부 다 없어지게 만드셨다고 한다. 정말 너무 했다. 전축은 그렇다 쳐도 레코드는 한 사람의 역사라고!
3주간의 꽉 찬 일정이 너무 힘들었던지 비행기 타기 전전날 감기에 걸렸다. 짐 쌀 것이 의외로 없어서 마지막날 거의 쉬기만 했는데도 좋아지지 않았다. 아빠가 준 판피린을 먹으니 좀 나아지길래 두알 더 챙겨서 와서 비행기 안에서 먹고 버텼다. 공항에서 산 호올스를 먹으며 가까스로 집에 도착해서는 며칠 내내 출근 할 때 빼고는 잠만 잤다. 밥도 귀찮아서 거의 대충 먹고 아시아임비스에서 사먹고 하다가 오늘에서야 제대로 장을 한 번 봤다.
해야 할 일이 많지만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고, 다음주부터는 (크리스마스주지만) 다시 일상의 루틴으로 돌아와야겠다. 행복한 기억이 가득한 2018년 마무리여서 다행이다. 내년에도 조금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게 천천히 노력을 지속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