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시골에 살다보니 먹고싶은 한국/아시아 음식이 있어도 구하기가 어렵다.
그러다보니 어지간한 음식은 아시아 슈퍼마켓을 통해서 소스나 재료를 구하고, 최대한 비슷한 채소를 독일마트에서 사서 직접 해먹는다. 한식은 재료가 다양하게 많이 필요하고, 조리시간이 길어서 자주 해 먹을 수는 없지만 중국이나 일본 영향을 받은 자취생 요리는 먹고 싶을 때마다 해먹는 편이다.
엄마와 남동생이 방문했던 3주간은 한식을 꽤 여러가지 해 드렸는데, 정말 한 끼에 여러가지 반찬을 하는 것은 도저히 힘들어서 국과 메인요리 하나, 그리고 미리 담궈둔 깍두기와 단무지무침 등을 곁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식 식사에 비해 준비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이 필요했다.
어제 어떤 계기였는지는 잊어버렸지만 갑자기 고추장, 된장, 간장 같은 장류를 만드는 법이 궁금해졌다. 직접 만들 심산은 아직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 만드는지 정도는 알아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82쿡과 같은 사이트에서 먼저 검색한 후 작성자의 블로그를 타고 타고 가면서 여러 사람들이 써 둔 장 담그는 법이나 후기등을 읽었다. 모든 장류는 메주에서 출발하니까 메주 만드는 법을 먼저 봤다.
어릴 적 외할머니가 메주를 만드신 적이 몇 번 있는데, 그 때 어깨넘어로 구경 했어서 대충의 프로세스는 알고 있었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처음이라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블로그들 둘러보다가 조금 감동했는데, 왜냐하면 꽤 많은 분들이 (아마도 우리 엄마정도의 연령대 혹은 조금 더 젊으신 분들) 여러 가지 이유로 직접 집에서 메주를 만들어서 장을 담궈 드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장은 한식에서 정말로 중요한 소스인데, 막상 우리 세대 중에서는 만드는 법을 알거나 알고싶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안타깝다. 그래도 이런 기록들이 있으면 나도 언젠가 여건이 되었을 때 참고해서 만들 수 있으니 아주 소중하게 느껴지고, 작성자에게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또한,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들끼리 소통하면서 레시피나 노하우를 주고 받기도 하고, 동네 할머니 등을 통해 접은 꿀팁을 공유하기도 하는 모습은 또 다른 감동 포인트였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장을 만들어 먹길 바라는 마음에 최대한 쉽고 적은 투자(항아리 같은 도구 구입)로 집에서 장을 담글 수 있는 방법을 직접 실험하고, 연구해서 포스팅 하기도 한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이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효과정을 통한 유익한 균을 섭취하는 독특한 식문화는 사실 지구 곳곳에서 나름대로 오랜 세월 발전해 왔지만, 장이나 김치처럼 그걸 소스나 베이스로 해서 온갖 요리가 탄생하는 것은 정말이지 놀랍고 위대하다. 어른들이 왜 효소에 관심이 많고, 또 엄청난 수고를 감수하고도 직접 만들려고 하시는지 좀 이해가 된다. 사람이 재료의 손질과 배합 등에 수고를 해 놓으면, 그 후에는 자연과 미생물들이 열심히 분발해서 좀 더 우리 몸에 잘 흡수되고, 또 깊고 복잡한 맛을 갖는 음식으로 승화시키는 점이 멋지다. 같은 의미에서 술, 차, 치즈, 요거트 등등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음식들의 매력에 푹 빠진 요즘이다.
그리고 역시 요리의 기둥은 소스같다. 소스란 것은 너무 중요하고, 또 요리하는 사람마다 갖가지 아이디어를 통해 어마어마한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어서 정말로 멋진 예술작품이라 생각한다. 요리 영화 같은 것을 보면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선생들이 특정 소스를 제대로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을 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한식의 맛의 핵심인 각종 소스류를 무에서부터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아두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히 만들어 볼 엄두는 안난다. 일단 나는 독일인들만 사는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메주 띄울 때 나는 냄새가 신경쓰이고, 보관할 항아리나 항아리 사이즈 정도의 통도 없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콩을 삶거나 엿기름을 끓이려면 6시간, 8시간 이렇게 오래 불을 써야 하는데, 이렇게 오랫 동안 인덕션을 쓰면 난 아마 전기세 때문에 파산할거다.
그래도 언젠간 해 보고 싶다.
장 담그기, 전통주 담그기 같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