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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수영장

어제 밤 태풍이 지나간 하늘에는 비 구름이 여전히 많이 있어서 하루종일 비가 오다가 멈추다가 했다.

비가 왔다가, 해가 비쳤다가 하는 오전에 창 밖을 보다가 문득 오늘 같은 날 한가한 실내 수영장에서 둥둥 떠다니면 기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수영장을 가 봤다.


오늘 처음 왔다고 말하니 창구 직원분이 친절하게 사용법을 알려주셨다.

개찰구처럼 생긴 문을 통과하면 높은 천장과 뻥 뚫린 넓은 공간에 로커룸, 샤워부스가 차례로 안쪽을 향해 있다.

로커들 중간 중간에 탈의 부스가 있어서 숨어서(?) 옷을 갈아입고 싶은 사람이 이용하면 된다.


대부분의 스포츠시설이 그렇다고 들었듯이, 탈의실과 로커룸은 남여 공용이다.

샤워실은 우리나라 해변가의 간이 샤워시설처럼 한 켠에 크지 않게 마련되어 있다.

장애인을 위한 샤워실과 어린이와 동반한 보호자를 위한 샤워실은 오히려 넓직하게 여러 칸 설치되어 있다.

또 단체로 온 아이들을 위한 로커룸과 탈의실이 아예 따로 마련되어 있기도 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과 어린이에 대한 배려가 어딜 가나 느낄 수 있어서 안심이 된다.


알려주신대로 능숙하게 옷을 갈아입고보니 뭔가 이상했다.

1. 옷을 벗고, 2. 샤워를 한 후, 3. 수영복을 입는 것이 정석인데,

1. 옷을 벗고, 2. 수영복으로 갈아입어 버린 것이다.

집에서 샤워를 하고 나와서 큰 문제는 안되었지만 어쩐지 중요한 중간단계를 건너뛴 기분이어서 불안해졌다.

한가한 날, 한가한 시간대를 골라 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관찰 할 대상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일단 샤워실로 향했다.

머리 감고 물 좀 묻히고 들어가자 생각했다.


샤워실도 텅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곧바로 한 아주머니가 들어오셨다. 만세!

그런데 그 분은 아마 수영을 마치고 나오신 듯 하다.

탈의실에서 본 몇 몇 할아버지들처럼 수건천으로 된 목욕가운을 입고 계셨다.

유레카!

이 수영장에 자주 다니는 친구가 큰 타올, 작은 타올, 드라이기를 가져가라고 조언해 줬는데 큰 타올이 저만큼 큰 타올을 말하는 거였구나. 내가 가져온 것은 제법 큰 스포츠타올이지만 상체를 덮을 수 있을 정도고, 몸을 다 가릴 정도는 아니다.


풀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역시 높은 천장, 뻥 뚫린 넓디 넓은 공간에 여러 종류의 풀이 있었다.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캐릭터 분수가 있는 놀이 풀, 초보자가 이용할 수 있는 허리높이 정도의 낮은 풀, 그리고 뭔지 잘 모르겠는 작고 동그란 풀, 바깥으로는 야외풀이 보였다. 미끄럼틀도 있는 큰 야외풀은 하절기가 끝나서 운영을 안하지만 야외에 있는 작은 풀은 여전히 운영중이다. 바깥 온도 13도가 써있는데도 야외풀에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다들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안춥나...


나는 25미터짜리 레인으로 된 스포츠풀에서 수영을 했다. 높다란 천장까지 시원하게 통유리로 된 공간이어서 빛도 많이 들어오고, 하늘이 보여서 무엇보다 좋았다. 풀 옆으로 빙 둘러 놓인 비치체어도 마음에 들었다.

스포츠 풀에는 얼굴 내밀고 둥둥 떠다니는 사람들도 있었고, 열심히 뺑뺑이 도는 사람들도 있었다. 열심히 하는 분들은 대게 나이가 많았다. 그리고 자세도 좋았다. 한 평생 수영을 해온 베테랑 이시려나. 나도 자유형과 평영을 번갈아 하면서 간만에 물속에서 움직이는 법을 기억해 냈다. 

레인의 4분의 3 지점까지만 짧게 돌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길게 돌기도 하고, 쉬엄쉬엄 30바퀴 정도를 돌았다. 오랜만인데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어깨죽지가 아프다.


층 안쪽에 릴렉스 코너가 있길래 가 봤더니 지금은 문을 닫은 비스트로와 뜨뜻한 온기를 뿜고 있는 사우나룸이 있었다. 그리고 미지근한 물이 있는 둥근 탕에서 아저씨들이 수압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니까 다들 나한테 넘나 시선집중이라 민망했다. 대놓고 안보려고 노력하면서 구경하는 것이 느껴저서 더 낯간지러웠다. 다들 몸이 엄청나게 컸다. 살도 살이지만 뼈대가 엄청 큼.


몸을 가릴 큰 가운이 없다보니 샤워 후에 다시 물에 헹군 수영복을 입고, 탈의 부스에 들어가서 몸을 다시 닦고,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나처럼 애매한 사이즈의 수건을 가져온 사람들은 다들 그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들 입고 벗기 간편한 비키니를 입나보다. 여자 중에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사람은 나랑 뺑뺑이 도시던 중년여성 한 분 뿐이었다. 나도 열심히 돌았으니 뺑뺑이용 수영복인 셈 치자.


친구 조언대로 들고간 헤어드라이기 덕분에 기다리거나 코인 넣지 않고 머리를 쉽게 말린 후 기분좋게 나왔다.

마침 비가 그쳐서 집에 오는 길이 엄청 개운하고 상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