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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Copenhagen 마지막날, Stockholm 첫날

01. Royal Copenhagen flagship store


드디어 와봤다. 로얄 코펜하겐 코리아 홈페이지 만들 때부터 나에게 덴마크와 코펜하겐이란 도시에 대해 환상을 잔뜩 심어줬던 브랜드이다. 호텔에서 10분거리에 플래그십 스토어가 있는데도 지난 3일간 들를 생각을 못했다. 그 주변을 수차례 지나갔었는데도. 그래서 체크아웃 전에 시간을 내서 갔다 오기로 했다. 야무지게 판트 챙겨 나와서 føtex food라는 콤팩트한 슈퍼마켓에 들러 반납 후 과일 말랭이 하나 샀다. 수없이 봐서 익숙한 도자기 라인들이 쭈욱 전시되어 있었다. 우아한 플레이팅과 디스플레잉 센스는 여전했다. 뮤지엄에서 작품 감상하 듯 경외심에 차서 구경했다. 버킷리스트 하나를 체크한 기분이었다.



02. Kødbyens Mad & Marked


Kødbyens Mad & Marked는 주말에 열리는 스트릿 푸드 코트이다. 코펜하겐 홈페이지나 블로그에서 본 것 같다. 여기서 다시 코펜하겐에 놀러 온 송님과 야노씨와 점심을 먹었다. 에티오피안 음식을 파는 곳에서 린젠콩으로 만든 커리같은 것에 도톰한 밀가루 전병과 채소들을 같이 먹는걸 시켰는데 너무 맛있었다. 처음 주문한 메뉴가 다 팔려서 미안하다고 거의 30%나 깎아주셨다. 천막 한켠에서는 재즈 트리오가 신나는 음악도 연주하고 있었다. 제법 실력이 좋았다. 시원한 바람과 좋은 음악, 좋은 사람들과 수다 떨며 먹는 점심이 너무 좋았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남은 동전을 전부 송님께 전달하며 커피 한잔만 사달라고 부탁했는데, 사다주신 에스프레소가 진짜 맛있었다. 코펜하겐에서 마신 모든 커피가 정말 맛있어서 특히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03. 기차타고 스톡홀름으로


코펜하겐에서 다리 하나 터널하나 건너니까 스웨덴에 왔다는 로밍 문자가 왔다. 덴마크는 정말 조그만 나라였구나, 새삼 느꼈다. 기차 방송이 스웨덴어로 바뀌었다. 덴마크어나 스웨덴어 둘 다 모르지만, 억양이 노래하는 것처럼 바뀐 것을 보고 스웨덴어임을 알 수 있었다. 영어로 다시 방송 해 줄 때도 역 이름을 노래하듯 이야기 하셔서 기차 안의 사람들이 따라 했다. Yo la Tengo를 들으면서 푸르른 창밖을 보고 있자니 뽕끼가 차오르고 너무 좋았다. 송님이 한국에서 덴마크까지 배달해 주신 책 두권 중에서 '올어바웃 치즈'라는 책을 읽으면서 갔다. 좌석이 역방향이라 좀 멀미가 났지만 휴대폰 화면을 보는 것보다는 책을 보는 편이 덜 멀미가 났다. 창밖을 오래 봐도 좀 멀미가 났다. 그래도 낮기차라서 너무 좋았다. 야간열차는...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말고는 이제 안타고 싶다. 아마도 이번 여행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싶다.

이런 저런 생각중에 덴마크에서 한 채식주의 체험에 대한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채소를 좋아하고 채소로 만든 음식을 좋아하니까 딱히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게다가 덴마크는 워낙 채식주의자가 살기 좋은 도시가 아니던가. 그렇다고 해도 몇 번 망설여 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한번 눈감고 오픈 샌드위치 가게에서 생선을 먹기도 했다. 포기하는 연습을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은 제대로 포기할 줄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도 느꼈다. 살면서 마주치는 결정의 순간에는 늘 두개 이상의 우열을 쉽게 가릴 수 없는 옵션들이 있다.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말라' 라는 말 등을 들으면서 자랐고, 포기하는 것은 무조건 안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선택 자체를 할 수 없다.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는 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맛있어 보이는 바베큐와 똑같이 맛있어 보이는 채식메뉴의 사이에서, 바베큐를 포기하고 내가 선택하는 가치가 나에게 의미있다면 훌륭한 포기이고, 훌륭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통한 채식주의 연습을 통해 나는 고기는 쉽게 포기할 수 있지만 생선은 쉽지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_-;; 물론 아직 채식주의자가 될 생각은 없다. 아직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많아서 그러고 싶지 않다. 이 또한 괜찮은 선택이자 포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여행을 통해 낯선 곳에서 예상치 못했던 상황을 겪을 때마다 하나씩 배워가는 느낌이 좋다. 나는 과연 몸으로 부딪혀서 직감을 통해 배워나가는 사람이 맞는 것 같아.



04. 스톡홀름


역에서 호텔까지는 걸어서 10분이 좀 넘는다. 오는 길은 느낌이 덴마크와 많이 다르게 서울과 더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중간중간 유럽건물들이 있지 않았다면 아시아의 한 큰 도시라고 여길 법도 할만큼 현대적인 공간이었다. 호텔이 위치한 곳은 논현동이나 청담동 같은 느낌이다. 호텔은 베스트 웨스턴계열의 저가형 부티크 호텔인데 디자인 어워드에 나가도 될 만큼 좁은 공간을 알차게 활용하는 멋진 아이디어가 농축된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다. 전기 물끓이게도 있어서 여행 내내 마시고 싶던 차도 한잔 끓여 마셨다. 좋다. 창문이 없는 방이다보니 너무 고요해서 티비를 틀어놨는데, 디스커버리 사이언스 채널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이야기 했다. 지카나 뎅기 바이러스를 옮기는 아시안타이거 모기가 전세계로 퍼지게 된 원인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한국타이어나 넥센같이 전세계로 수출하는 타이어들이 그 원인이었다. 모기가 타이어안에 알을 찔러 넣고, 그게 화물선을 타고 전세계로 수출된 것이다. 아프리카, 남미에 원래는 없던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를 옮기는 아시안타이거 모기는 그렇게 좀비바이러스가 퍼지듯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었다. 무시무시한 사우쓰 코리아...

일기 쓰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씻고 자야지.

덴마크서부터 가져온 후무스와 과자빵, 치아푸딩을 저녁으로 먹었다.

나름대로 맛있었다. 돈도 안써서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