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지나서 쓰려니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열심히 더듬어 써보겠음
지금은 스톡홀름 다섯째날, 함부르크로 가는 기차를 타서 쓰고 있다.
01. 모데아네 무젯
스펠을 몰라서 일단 내가 읽은 발음으로.
그동안 너무 다리를 혹사시키며 걸어다녔더니 정강이 통증으로 시작해서 이젠 발목과 발등 사이의 힘줄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늘도 평소처럼 무작정 걸어다니기만 하는 것은 무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톡홀름의 대중교통을 타보기로 했다. 앱을 다운받아서 바로 카드 결제해서 티켓을 사고, 75분안에 몇번이고 갈아탈 수 있다. Valid된 티켓인 QR코드를 스캔하는 머신이 어지간한 매표소마다 설치되어 있고, 버스처럼 없을 경우 기사에게 보여주면 된다. 단순하고 간편한 방식인데 정말 깔끔하게 잘 구현해 놨다. 스톡홀름에서 산다면 정말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래봤자 나는 역을 못찾아서 한참 헤매고, 반대방향으로 갔다가 돌아오고, 온갖 삽질 후 딱히 다리를 쉬게 하는 목적도 이루지 못한 채 스톡홀름의 멋진 지하철과 대중교통 체험에 만족하며 모데아네 뮤지엄에 도착했다. 건축과 현대미술 큐레이팅 전시를 하는 곳.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섬의 언덕에 위치해서 경치가 정말 멋졌다. 미술관마다 딸려 있는 카페나 식당은 경치와 분위기, 음식의 질이 전부 좋아서 그 것만을 목적으로 찾는 사람이 꽤 있는 듯 했다. 나도 도쿄나 이런 도시에 산다면 휴일에 노트북이나 책 들고 나와서 뮤지엄 카페에 앉아 하루 종일 쉬고 놀다가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서울에 있을 때는 왜 못했지? 생각하다보니 못하진 않았다. 너무 번잡해썬 것만 빼고는 서울이나 성남의 미술관들도 참 좋다. 떠나기 전에 못 가본 곳이 많아서 아쉽다.
뮤지엄 샵도 컬렉션 자체에 큐레이터나 미술관장의 사상이 드러나므로 재미있다. 물론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여기처럼 디자인 제품들을 디피해놓은 곳도 있지만. 스칸디나비안 나라들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코너를 늘 유심히 보게 된다. 그만큼 비중도 있고, 제품들도 다 좋다. 나도 사고싶은 건축연습 책이 있어서 사진을 찍어놨다.
샵을 보고 배부터 채울까 싶어서 미술관 내부의 레스토랑에 갔다. 이 곳에는 내부와 외부에 카페겸 레스토랑이 두개 있다. 레스토랑에서는 스톡홀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오늘의 점심'을 팔고 있었다. 여름 뷔페인데 제법 저렴했다. 김치도 있어서 신기했다. 백김치 같은 걍 절인 배추인데 나름 맛있었다. 무엇보다 경치가 끝내줬다. 통유리로 시원하게 보이는 바다와 떠다니는 배들, 바다 건너 다른 섬. 날씨도 환상적으로 화창하고 좋아서, 예쁜 자연 색을 흠뻑 즐기면서 햇빛을 쬈다. 여행 내내 좋은 풍경을 보면서 한가하고 느긋한 점심을 계속 먹었다. 저녁은 대부분 간촐하게 먹었기 때문에 비용 걱정도 없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음시을 먹을 수 있었다. 정말 호사롭고 행복한 시간이다.
기획전은 유료고, 컬렉션이나 상설전은 무료여서 무료인 부분만 관람했다. 애초의 목적은 다리를 쉬게 하기 위해 좋은 경치를 가진 좋은 공간안에 나를 두는 것이어서 쉬고 싶을 때마다 앉아서 쉬면서 느긋하게 관람했다. 붐비긴 해도 번잡하진 않아서 얼마든지 느긋하게 쉬면서 관람할 수 있었다. 이렇게 느릿느릿 살아가는 것을 다들 원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은 것 같다.
02. 일룸
한국에 있는 브랜드와는 다른 것 같은데, 유럽의 생활용품(주로 북유럽 국가들) 브랜드들 편집샵 같은 곳으로 규모가 크고, 잘 큐레이팅 된 상품들이 몇시간이고 매장안에 있고 싶게 만드는 곳이다. 뮤지엄을 나와서 바다를 보며 쭉 걷다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서 자잘한 것을 몇가지 샀다.
03. 파라디셋 씨티
미래지향적인 유기농 마트이다.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고, 지속 가능한 생산과 유통방식을 고집하는 먹거리나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곳. 비슷한 컨셉의 가게는 많지만 아무래도 더 오래 고민했고, 더 먼저 시작한 북유럽의 지혜가 녹아있다. 저녁으로 먹을 샐러드와 병아리콩으로 만든 녹두전 같은 것을 샀다. 폐장시간 근처에 사서 20% 할인을 받았다. 또 주스 같이 숙소에서 마실 것과 몇가지 선물용이 될 법한 티, 민트사탕 같은 것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