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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할머니, 우리 할머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휴먼빙인 우리 외할머니가 내일 지구 반대편으로의 여행을 떠나신다.

금요일 밤에 김장을 도우러 엄마집에 가서 아주 오랜만에 할머니와 함께 잤다.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조금이라도 특별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그랬다. 그렇지만 결국 토요일에 할머니와 인사하면서 펑펑 울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는 날 울보라고 놀리셨는데, 커도 썩 변하진 않았다. 한번 울기 시작하면 멈추기가 힘들다.


나는 살던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를 갔던 스무살 무렵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쭉 할머니와 한방을 썼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았다.

할머니는 항상 미안해 하셨다.

하지만 내가 할머니를 많이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는지 미안하다는 말씀보다는 항상 고맙다고 하셨다.

늘 늦잠을 자는 내가 부랴부랴 학교 갈 준비를 하고 뛰쳐나가면, 내가 흘린 머리카락들을 쓸으시며 방이 솔밭같다고 하셨다. 난 그 표현이 너무 우습고 좋았다.

어느날은 친구들이 와서 나와 할머니 방에서 놀다가 할머니의 작은 라디오를 터뜨린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한사코 필요없다고 하셨다. 눈이 불편한 할머니는 밖에도 잘 나다니시지 않고, 방에서 라디오 듣고 성경말씀 듣고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셨다. 새 것을 사드려야지 계속 생각했는데 결국 오늘까지 사드리지 못했다. 그런 작은 사이즈에 간편한 라디오를 구하기 어려웠다는 것은 핑계였다. 계속 마음에 남는다.


성격이 워낙 깔끔하신 할머니는 덜렁대는 다른 가족과 달리 자기 방을 항상 꺠끗하게 정돈하고 관리하셨다.

뇌경색으로 시야가 많이 좁아지시고, 불편하신데도 여전하셨다. 예전에는 없었을 구석의 먼지 같은 것이 보일 때면 서글펐다.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인 엄마에게 상처를 받을 때마다 할머니가 위로해 주셨다. 조용하고, 다른사람에게 나쁜 소리를 못하시고, 그러면서도 마음속에 굳은 믿음과 심지가 있어 강한 분이시다. 우리 엄마의 엄마가 그런 훌륭한 분이라는 것과, 늘 그자리에서 따뜻하고 투박한 손으로 지친 내 등을 쓸어내려 주시던 할머니가 계셔서 큰 위안이 되었다. 마음의 기댈 곳이 되어주는 할머니가 엄마집에 항상 계셔서 좋았다. 엄마한테 전할 말이 있어 전화를 하면 전화를 받아주셔서 좋았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좋고 행복한 기억밖에 없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렇지 않으실 것이다. 아빠에게 늘 미안해 하셨다. 본인이 짐이라고 계속 말씀하셨다. 많이 배우시진 못했어도 그 누구보다 품위와 염치가 있는 분이셔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지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외삼촌을 따라서, 아르헨티나로 가신다고 하셨다. 갈 곳이 없어 걱정했는데 하나님이 아들집으로 보내주셔서 다행이라고 웃으셨다. 할머니의 계실 곳은 엄마 집이 아니었던가 싶어 속상했다. 엄마가 아프게 되고 부터 더 마음이 불편해 지셨다고 한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이해는 되어 더 말릴 수가 없었다.


어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서 할머니가 떠나시는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평생에 걸쳐 쌓여온, 여러가지 일들이 할머니를 그 먼나라로 가서 살도록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편이 할머니 마음이 편하다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일은 그냥 할머니가 마음 편히 여행하시도록 잘 배웅하는 것 이겠지. 할머니의 따뜻한 음성은 전화를 통해서 들을 수 있을테고, 뭣하면 큰맘먹고 남미여행 계획을 세우면 뵐 수도 있을 것이다.


할머니같은 향기로운 분이, 내 곁에 더이상 머물지 않아 서운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친척들에게 또 많는 위안이 되어주실 것이다. 그리고 먹을 것과 햇볕이 풍부한 그 곳에서 부디 행복한 나날을 보내시길 기도해야지.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많이 보고싶을 것이다.


얼마전에 페이스북에서 스티브잡스의 마지막 워드라는 것을 읽었다.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강하게 남는다.


Treasure Love for your family, love for your spouse, love for your friends...

Treat yourself well. Cherish ot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