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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죽음과 함께 잃어가는 것들

산책길 익어가는 보리밭, 노을

둘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빠 쪽 친척 집안에서 가장 부유한 어르신이었고, 가장 오래 사셨다. 우리 엄마가 이 분을 많이 의지하고 도움을 받은 적 많고, 감사한 마음을 표하기 위해 다 같이 주기적으로 찾아뵈었었다. 으리으리한 저택에 사실 때부터 늘 마음속으로 부러워하는 환경의 집이어서 따라가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다 보니 일찍 돌아가신 친조부모보다 횟수로는 훨씬 많이 뵈었다. 이런 표현이 옳지 못함은 알지만, 할머니는 노인이지만 미인이셨다. 날씬하고 늘 단아한 옷을 입으셨고, 미소가 예쁘셨다. 나도 저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집안 어른이셨다. 하지만 할머니와 그 집에서 오래 일하신 가정부 아주머니(성함도 까먹었다) 말고 다른 친척들과는 거의 교류가 없었는데,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 말년은 치매로 고생하셨다고 들었는데 독일에 나온 후로 한 번도 뵙지 못했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다. 할머니의 장녀이자 아빠의 사촌누나에게서 부고를 알리는 문자가 왔다고 한다. 전화가 아니라 문자여서 요즘 문자나 카톡확인을 전혀 안 하시는 아빠는 그 소식을 일주일이 지나서야 알아차리셨고, 통탄해하셨다.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할 아빠가 아니면 친척들에게 연락을 돌릴 사람도 없으니 장례식에 사람이 너무 없었다고 한다.

 

며칠 전 문득 아무 이유없이 엄마 친구가 생각났다. 엄마와 유독 가까우셔서 성함도 알고 여러 번 만난 분이다. 예전에 ㅁㅁ은행에서 오래 근무하셨어서 당대의 유명한 가수의 콘서트 티켓 같은 것을 선물해주기도 하셨다. 그분이 왜 떠올랐는지는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가 없으니 이제 그 분과 나의 인연도 아예 끊긴 것이나 다름없다. 엄마의 죽음은 엄마를 통해 이어진 수많은 인연들도 함께 잃는 것임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둘째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아빠도, 나와 동생도 그분을 그렇게 자주 찾아뵙고 맛있는 것도 얻어먹고 세뱃돈도 두둑이 받으며 좋아하는 어른으로 기억 속에 남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아도 그렇게 잃은 인연이 얼마나 많을까?

 

남편의 이모부도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는 각 집에 안부인사 드릴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별 일 없죠?'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매년 누군가 돌아가신다. 그런 나이가 되었다. 문득 외할머니가 잘 계신지 걱정이 되어 전화하려 했지만 시간이 애매해서 내일 해보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누군가를 계속 잃게 되겠지. 어릴 때는 좀 멀던 사람들을 잃었는데 이제는 점점 가까워온다. 그러다가 내 차례가 오는 거겠지. 물리적으로 16+시간 거리에 살고, 시차까지 있으니 부고도 늦게 접한다. 삶이 참 쓸쓸하게 느껴지는 시차다.

 

둘째 할머니의 유해는 다른 집안 어르신들과 마찬가지로 산 분장을 하였다고 한다. 대대로 불교를 믿어온 집안이라 산소나 납골당에 모시지 않는 것인데, 독실한 기독교인이셨던 엄마는 납골당에 모셨다. 아빠 대에 와서 큰아버지들도 천주교 등 크리스천이셔서 납골당에 모셨다. 생전 믿으셨던 종교에 따라 이렇게 마지막 절차를 후손들이 결정하게 되는구나. 나는 가급적이면 아무것도 남가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