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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일류 이류 삼류 사류

노을이 멋진 어제의 산책길

우연히 넷플릭스의 '뭘 보지' 화면을 지나가다가 둘 다 '어? 틀까?'하고 동시에 관심이 가는 드라마를 시작했다.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사전정보가 전혀 없이 드라마의 제목, 썸네일, 그리고 일본 드라마라는 점, 우리가 아는 배우들이 나온다는 것들이 동시에 작용했다. 드라마 제목은 '콰르텟'이다. 극 초반에 현악 사중주단이 꾸려지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5화까지 봤고, 이 각본의 완성도는 너무 수상하다 싶어서 누가 썼나 찾아봤더니 전에 너무나 재밌게 봤던 '최고의 이혼'을 쓴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이었다. 노다 아키코와 더불어 두 사람의 작품이 너무 좋아서 일본 드라마 신작이 기다려진다. 콰르텟은 신작은 아니고 2017년쯤에 나온 드라마다. 하츠코이에서 너무 좋았던 배우 마츠시마 히카리도 주 4인방 중 한 명이라 좋다. 일단 주 4인방과 수상한 할머니 역할이 다 아는 얼굴들이라 아무 생각 없이 틀었다가 계속 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아직 다 보지도 않았는데 일기를 쓰는 이유는 어제 본 에피소드가 너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내 인생을, 아니 아마도 더이상 비범하게 되지 못한 채로 장성해 버린 어른들의 인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다음에 그럼 뭐 어떠냐는 위로를 건네는 것 같은 이야기였다. 더 이상 음악으론 먹고살 수 없는 삼류 연주자들의 현악 사중주단이 함께 생활하며 음악을 계속하자니 돈이 필요한데, 어느 날 지역 사업가의 음악 축제에서 연주를 해달라는 듣기로는 근사한 제의를 받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장중한 클래식 공연이 아니고, 우스꽝스러운 만화 캐릭터처럼 코스프레를 하고 쇼를 하는 것. 엄청나게 자존심에 상처를 받지만 멤버 중 한 명이 이런 소릴 한다. '이게 우리의 실력이에요, 현실인 거죠. 그러니까, 한 번 해봐요. 인정할 건 인정하고 당당하게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연주하는 척을 해봐요. 프로로서 콰르텟 도넛홀(사중주단 이름)의 꿈을 보여줍시다!' 대충 이런 메시지. 그리고 공연을 잘 마치고 어딘지 찜찜한 얼굴로 인사하고 돌아가는 멤버들의 뒷모습을 배웅하며 음악축제를 기획한 사장이 이런 소릴 한다. '꿈을 꾸는 삼류는, 사류다' 아마도 이 소리는 삼류까지도 충분히 돈벌이가 될 수 있고, 자존심만 내려놓고 즐겁게 임하면 될 일인데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은 돈벌이조차 안 되는 사류라 칭하고 싶은 자본가의 소리로 들린다. (부르주아척결!!)

 

나는 꿈이란걸 거창하게 해석하지 않아서, 역시 꿈은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류든 이류든 삼류든 그건 상관없다. 내가 있는 자리가 오로지 나의 성취(또는 잘못)만으로 결정된 것도 아니고, 스스로를 탓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려고 애쓴다. 대신 그 자리를 뭔가를 하고 싶은, 해보고 싶은 아이디어로 채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계속 생각하다 보면 진짜로 하게 되어 버리기도 하니까. 많은 걸 상상할 필요는 없지만 역시 꼼꼼하게 자세하게 상상해 볼수록 가치가 있다. 콰르텟 도넛홀의 꿈이 넓고 근사한 무대에서 그들의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사람들이 그걸 듣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거란 가정을 해보면, 길거리 공연을 통해 즐겁게 음악을 듣는 사람들과 교감을 나눈 그들은 이미 절반정도 꿈을 이뤘다. 넓고 근사한 무대만을 꿈꿨다면 이루기 너무 어려운 꿈이었겠지. 그래서 최대한 자세하게 여러 가지 주변 환경에 대한 꿈도 함께 꾸는 편이 꿈에 가까워져 가는 동력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고 믿는다.

 

어제 드라마를 보고 나도 내일인 오늘에 대한 꿈을 꿨는데 바로 일찍 일어나서 레몬을 넣은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면서 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걸 꿈이라 부르면 좀 그렇고, 꿈이라 부르려면 매일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 아무튼 시작은 오늘이니까. 일찍 일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 일찍 침대에 누웠고, 입면에 방해만 되는 스마트폰을 다른 방에 두고 잤다. 고양이 둘이 내 양쪽귀 바로 옆에서 고롱대는 것만 들으며 셋이 함께 잠에 들어서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평소보다는 좀 일찍 일어나서 출근 전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작은 목표도 이뤘으니 내일도 그랬으면 좋겠다. 내일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드려나? 안 들면 일요일에 구울 빵 레시피 연구를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