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 Journal

판데믹 중에 독일에서 연말을 보내는 방법

벽난로 옆에 트리가 있는 우리집 거실 풍경

독일에서 여섯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첫 해에는 대학원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고, 두 번째 해에는 한국에 방문, 세 번째는 독일에서 만난 친구네 가족 모임에 초대를 받았었다. 네 번째는 같은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유일한 한국인 친구 부부와 함께, 다섯 번째였던 작년에는 나는 한국에서 남편은 이곳에서 각자 보냈다. 올 해는 우리가 손님을 초대했다. 남편과 함께 공부하고 있는 한국에서 온 부부 가족. 크리스마스가 마침 토요일이었어서 주말 동안 손님을 초대하기에 좋았다. 마침 연말과 새해 첫 날도 주말이기 때문에 대학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 가족을 초대할 예정이어서, 정말로 꽉 채워서 12월의 모든 주말은 손님맞이를 하면서 보내게 된다.
 
첫 번째 주말은 남편의 학교 친구분이 놀러 오셨다. 남편과 동갑인 성격이 호쾌한 언니였는데,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게임을 하고 술도 마시고 2박 3일을 즐겁게 보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는 독일의 확진자수가 무시무시해진 가운데 2G+(백신 접종 완료자 그리고 당일 안티젠 테스트 네거티브인 사람들끼리) 룰을 적용한 채로 예전부터 계획한 유럽에 사는 한국 여자분들과 1박 2일 파티를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독일의 코비드 사정과 처음 주최하는 파티여서 모르는 것도 많고, 걱정도 많고, 잘 해낼 자신도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일을 벌인 스스로가 대견할 만큼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초면인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배려하며 따뜻하게 대하는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다시금 깨닫지만 우리 한국 여성들 정말 멋지다.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내 집에 불러 모았다는 자체만으로 마음이 꽉 차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힘이 들기는 했다. 아무래도 청소 상태랑 개개인의 안전, 건강 문제가 가장 신경이 쓰였다. 
긴장 탓에 주중에 하루는 뻗어있기, 그리고 나머지 날들은 청소와 세탁을 하며 보냈다.
그다음 주에는 다시 남편이 기숙사에서 돌아왔고, 토요일엔 독일에서 만난 아마도 가장 친한 친구 둘을 초대했다. 둘은 얼마 전에 결혼을 해서 이제는 가족모임이 되었다. 친구들과 찐한 포옹을 나눌 때 너무 오랜만이라 눈물도 찔끔 났다. 둘은 새로 이사 온 우리 집을 너무 좋아해 줬다. 예전 아파트에서도 이 친구들과 함께 한 즐거운 추억이 참 많은데, 앞으로도 쭉 그렇게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워낙 편안한 사이여서 그런지 그동안 맞이한 손님들 중에 가장 덜 긴장하고 즐겼던 것 같다. 다 같이 마리오 파티, 저스트 댄스를 신나게 하며 놀았다. 다음날에는 미리 예매해 둔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갔다. 우리가 잘 아는 두 거장이 연주하는 프랭크 소나타와 쇼스타코비치 40번 첼로 소나타를 듣고 왔다. 아주 오래간만에 음악을 듣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보낸 시간이어서 개운한 느낌마저 들었다.
레스토랑을 가거나 공연장을 가기 위해서는 늘 안티젠 테스트를 받고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 성가시기는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기 전 후에 검사를 하는 계기가 되어서 적어도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면 조금 안심할 수 있게 된다.
그다음 주였던 크리스마스이브부터 2박 3일간은 또 남편 학교 동기분의 가족이자 부부와 보냈다. 비슷한 또래여서 또 정말 재미있었다. 이 분들은 특히 크래프트 맥주 테이스팅에 관심이 많고 지식도 많으셔서 내가 미처 관심도 갖지 못했던 다양한 맥주를 가져와서 다 같이 테이스팅 하며 즐겁고도 꽤나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약간 모범생 타입인 이들과는 오버쿡드를 같이 하면서 놀았는데 마리오 파티 때문에 스위치를 사겠다던 이전 커플들처럼 이 분들도 오버쿡드에 낚여 스위치를 사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초대하는 인물들 중 가장 난장판인 대학원 친구들이 온다. 친한 친구들이지만 걱정은 가장 많이 된다. 건강에 유독 민감한 독일 친구 둘을 제외하면 전부 한국 사람들을 초대했어서 코비드 걱정은 그래도 크게 하지 않았었는데, 인도, 브라질, 불가리아에서 온 이 친구들은 건강 염려에 대한 스탠다드가 우리와 좀 다르다. 그래도 또다시 평일 동안 에너지와 외향력을 잘 충전해서 즐겁게 보내야지. 이전 경험으로 미루어봐서 다 같이 요리를 하면 너무나 모든 곳이 난장판이 되므로 우리가 대부분의 것을 준비해두고서 초대하려고 한다. 제발 시샤를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할 것만 같다. 아무튼 여러모로 내 성격과 딱 맞는 친구들은 아닌데 올 한 해도 나를 잘 견뎌줬으니 보답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가끔 이 세계가 크리스마스 시즌의 서양 사회 분위기와 같다면 참으로 좋겠다고 생각한다. 평온하고 고요하고 가족들과 만날 생각에 스트레스도 좀 받고, 그래서 친구들을 보면 더 활짝 웃으며 서로의 가족에 대한 스트레스를 공유한다. 길거리, 크리스마스 마켓은 반짝반짝 전구들로 예쁘게 장식되어 있어서 4시면 해가 져버리는 어둡고 눅눅하고 추운 겨울에도 희망의 빛이 켜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아드벤트 칼렌더를 매일 아침 열어보면서 12월 1일부터 24일은 설렘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행복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하길 기원하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휴가를 쓰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동료들이 많아서 직장일도 바쁘지 않다. 재촉하는 사람이 없다면 일하는 것은 정말 쉽고 스트레스받을 필요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만 나의 주말처럼 다들 한 해가 가기 전에 마음속으로 친근함을 느끼는 지인들을 서둘러 만나려고 다들 꽉 찬 일정으로 주말을 보내는 듯하다. 고요한 평일과 유독 더 시끌벅적한 주말, 그 대비가 아름다운 한 달이다.
 
올 가을에 하우스로 이사 오고 나서 처음 맞는 연말이다. 지난 11개월과는 많이 다른 방식으로 올 해의 12월을 보냈기 때문에 나에게도 굉장히 특별한 연말이었다. 6년 차에 접어드는 독일 생활에서 이만큼 내 삶이 바뀌었구나 싶은 실감을 할 수 있었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사람,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따뜻한 마음, 고마운 마음, 행복감을 느꼈다. 이제 남은 겨울도 이 추억을 하나씩 곱씹으며 버텨내야지. 그리고 한 번씩 왁자지껄함을 겪고 나니 고요한 매일매일의 일상의 평화도 더 소중하게 여기며 만끽할 수 있게 된 것은 보너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