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에 내 생일이었다. 나는 디즈니랜드에 다녀왔고,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감은 있었지만 내가 내 생일에 예약해둔 여행을 떠나고 고대하던 디즈니랜드에 생에 두번째로 가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괜찮은 분위기였다.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이미 파리 디즈니랜드는 휴업에 들어갔고, 만약 지금의 상황이었다면 위약금이고 뭐고 집 밖에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
지난 2주간 나는 파리 여행 후로 약한 감기기운이 있기도 했고, 아무래도 불안한 감이 있어서 한국의 상황으로 부터 배운대로 14일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회사 동료들에게도 양해를 구했는데, 절반정도는 '그래 아프면 부디 집에 있어줘' 라는 대답을 했고, 절반은 '에이, 파리여행 이야기 듣고 싶었는데 아쉽다, 얼른 나아서 출근해!'라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 저마다 취향이 다른데, 우리 팀은 재택근무에 되게 관대하지만 역시 사무실에서 얼굴보고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사무실 문화가 유지되고 있다. 나도 사무실 근무를 싫어하지 않는다. 높이 조절 가능한 튼튼하고 넓은 책상, 편안한 의자, 크고 시원시원한 창문, 듀얼모니터, 안정적인 인터넷, 온갖 음료가 서빙되는 커피머신... 출퇴근 거리만 좀 짧았어도 더 자주 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사무실에 오지 않고 있다. 이런경우는 18년, 20년, 경력이 있는 동료들도 처음이라고 한다. 2주 전에 나의 자가 격리 소식에 약간 '뭐 그렇게까지..' 반응을 보이던 사람들도 이제 스스로 같은 선택을 내리고 있다.
2주동안 나는 딱 두번 외출했다. 생리대랑 생필품이 떨어져서 드럭 스토어에 한 번 다녀왔고, 주말에 날이 너무 좋아서 사람 없는 강가로 차타고 가서 산책을 조금 하다가 왔다. 그리고 어제부로 14일을 꼬박 채웠다. 다행히 약한 감기처럼 지나간 정체모를 그 것...은 정말 약한 수준에서 끝났고, 컨디션이 돌아와서 어제는 운동도 시작했다. 지난 3주간 운동을 쉬어서 바디펫과 체중을 측정해보니 약간 살이 쪄 있었다. 다시 긴장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그동안 출근시각 5분전에 침대에서 나와서 물 한잔 마시고 일시작함) 옷도 외출 할 만한 옷으로 갈아입고, 커피도 내려 마시고, 일기도 쓰고 있다.
아침과 저녁 루틴을 잃어버린 채로 살았었는데 이제 많이 쉬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와중에 재택근무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서 다행이다. 아무래도 외노자로서 신변의 불안을 느낀다. 내가 속한 부서에서 일년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큰 글로벌이벤트가 취소되었고, 전체 부서가 약간 붕 뜬 상태로 우왕좌왕 하고 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요즘이다. 확진자 증가 그래프의 변화가 내 일상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앞으로의 변화도 어떤 영향을 나에게 몰고 올지 알 수 없다.
지난 삼년반 동안 한 번도 내게 직접 전화를 건 적 없던, 아니 평생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 적이 별로 없는 아빠가 이틀에 한 번 꼴로 잘 지내냐고 안부전화를 걸어 오신다. 한국에서 듣는 유럽 소식이 많이 안좋나보다. 많이 안좋다. 나는 비록 평온하게 집안에서 칩거 생활을 하며(평소와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잘 갖춰진 회사 클라우드 이용해서 일도 차질없이 하고 살고 있지만 안그래도 위기던 유럽 경제는 이제 피할 수 없는 내리막길을 목도에 두고 있고(절벽이 아니길 바랄 뿐), 영주권 신청까지도 아직 9개월 정도 남은 나는 그저 내 모가지 안짤리고 버텨 있기를 바랄 뿐이게 되었다. 2주전에 파리에 가는 열차안에서 자기계발과 이직계획을 상상하고 있었다는게 먼 옛날의 꿈만 같다.
이럴 때는 그냥 대책없이 낙관적인 척을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모두 이 위기를 지나갈 것이다. 이겨내서 더 잘살게 되지는 못할 것이지만, 그럭저럭 모두가 하향 평준화 된 풍요의 시대 막바지를 종국에는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인류가 자초한 일이고, 견뎌야 할 일이다. 홈트 열심히 하고 정신과 신체의 건강을 위한 루틴을 다시 시작하고 패닉하지 말고 잘 지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