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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여전히 더 커야 해

얼굴 기대고 있는 노릉. 귀여워.

어른 노릇 하랴, 외국인 노릇 하랴, 고양이들 집사 노릇 하랴 내가 고생이 많다. 저 외국인 노릇 대신에 안 해도 되는 노릇이 몇 개 있어서 짐을 약간 덜어주기는 한다. 하지만 비교는 좀 어렵지만 마찬가지로 어렵고 힘들다. 특히 오늘처럼 연말 연초 연휴 후 업무에 복귀해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눠야 할 때, 외국어도 잘 안나오고 모든 것이 다시 어리버리한 처음 상태로 돌아와 버린 것만 같을 때는 정말이지 괴롭다. 누가 나 대신 내 역할좀 하면서 회사 다녀주면 좋겠어. 그나마 점심은 대학원 동기인 친구들과 먹었다. 그들은 이제 더이상 내 업무 능력을, 영어 실력을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 대하기 편하다. 이런 마음을 먹기 까지도 3년 반이나 걸렸네. 그동안 안 떨어지고 붙어 있어준 친구들에게 잠시 고마움의 마음을 가져야지. (묵념)

 

다시 정상적인 출퇴근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오니 뭔가 시간이 부족하다. 벌써 열시 반이 다 되어간다. 오늘 퇴근해서 한 것은

  • 청소기 돌리기
  • 고양이 밥 챙겨주기
  • 25분 킥복싱 유산소 운동
  • 밥먹기
  • 빨간머리앤 한 편 보기
  • 설거지 및 주방정리
  • 샤워

빨간머리앤 본 것 말고는 그냥 생활이구나. 어쩐지 사는 것은 도화지에 기하학적 도형을 그려 면을 나눠 놓고 한 칸 한 칸 포스터컬러 물감으로 칠하는 '구성' 같다. 이런 기법의 그림 그리기를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미술학원에서는 그냥 '구성'으로 통했다. 연필로 그은 선들이 모여 도형을 만들고, 도형과 도형이 연결되는 방식을 통해 또 다른 도형의 면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면은 내가 붓과 물감으로 칠해서 메꾸기 전까지는 미완성의 공간으로 남는다. 나는 매일매일 한 칸 한 칸 지루하게 면을 칠해가고 있는 것 같다. 전체 완성본이 어떤 색감과 이미지를 가질 지는 대략적인 이미지만 있을 뿐, 모든건 다 칠해봐야만 결국 알게되는 실력을 가지고 살고 있다. 몇 가지 룰은 알고 있다. 같은 색으로 서로 맞대고 있는 두 도형을 칠하지 않는 것. 최대한 삐져나가지 않고 깔끔하게 한 도형을 마무리 하는 것. 여기까지 쓰고보니 전혀 삶과는 상관 없는 메타포 같다. 그냥 오늘 하루에 대한 상징으로 여기련다.

 

어제도 늦게 자서 일찍 일어나서 책 읽는 것은 못했는데, 이번 주는 조금 느슨하게 가려고 한다. 내일도 어려우면 목요일부터 잘 하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그래서 바닷마을 다이어리 좀 읽다 자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