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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난생 처음 식빵을 구워 보면서 느낀 점

내가 구운 식빵에 피넛버터와 내가 만든 블루베리쨈을 발라서 아침 식사!

베이킹, 그러니까 반죽을 베이킹 소다와 섞어서 틀에 부어서 굽는 케이크 류가 아닌, 효모를 사용해서 발효와 숙성의 시간을 거쳐 부풀려 구워내는 빵 굽기를 도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지난달 말에 들은 베이킹 수업에서 처음으로 효모를 사용해서 빵을 구워보기는 했지만, 그건 피자랑 마찬가지로 그냥 바닥에 까는 반죽을 만들고 그 위에 얹는 내용물이 좀 더 중요했던 키쉬를 만든 것이었다. 피자를 만들어 본 적은 있지만 그건 어째서인지 베이킹이라기보다 요리에 가까우니까 이 것을 첫 번째 도전으로 삼겠다.

 

식빵을 구웠다. 베이킹이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식빵이 먹고 싶어서 지난달에 효모를 이용한 키쉬굽기 실습도 해봤겠다, 한 번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도전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무래도 한국에 살 때는 식빵은 그냥 사 먹으면 되었으니까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독일에 와서도 한동안은 독일빵도 맛이 괜찮고, 바게뜨 같은 것으로 식빵 먹고 싶은 욕구를 퉁쳐왔었다. 그렇지만 독일에서 사는 빵은 어쨌든 질이 좋은 식빵처럼 촉촉하고 보들보들한 질감의 것이 없다. 대부분 드라이하고, 굽는 시간이 좀 긴지 겉이 매우 딱딱하고, 글루텐을 최대한 억제하는 게 사명인 것처럼 퍼석한 편이다. 하얀 빵은 건강에 안 좋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별로 있지도 않다. 가끔은 한국에서 사 먹던 하얗고 촉촉하고 보들보들한 식빵을 찢어먹고, 토스트 해서 쨈과 땅콩버터 따위를 발라먹고 싶다. 그러다가 마침내 빵 사러 나가기가 귀찮아서 빵을 굽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나의 예언이 맞아떨어진 순간이 왔다.

 

주 3일정도는 출근을 하니까 집 밖에 나가는데, 나머지 날들은 굳이 약속이 없으면 나가고 싶지 않고, 어지간해서는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삶을 살고 있다. 너무 좋다. 이걸 위해서 집을 그렇게 쓸고 닦고, 쾌적하게 유지하고, 좋은 가구도 사 넣고 한 것이다. 그래서 집 밖에 나가야 할 구실 하나를 없애보고자 했다. 수업을 하루 들었던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생효모를 쓰는 법 같은걸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었다. 유투브로 대부분의 '입문' 수업을 듣는데, 레시피를 제공하는 유투버들이 잘 다뤄주지 않는 디테일을 그 수업에서 다른 사람 하는 것이나 선생님 설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레시피 영상만 봐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감을 잡는 수준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었다면 예전에 식물 심고 키울 때처럼 오만가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테고, 그게 해결되기 전까지 고통받으며 아무것도 시작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시도는 장렬하게 실패했다. 언젠가 왜 샀는지 잘 모르겠는 인스턴트 이스트가 집에 있었다. 강력분도 있었다. 계란도 있었고 버터랑 두유도 있었다. 그래서 유투브 레시피를 몇 개 보고, 가장 쉽고 실패가 적을 것 같은 것을 두 개 - 일반 버터 식빵 레시피와 비건 레시피 하나씩 - 레시피 노트에 받아 적은 뒤 가열차게 반죽에 들어갔다. 일반 레시피를 시도했다. 왜냐하면 완성되었을 때 맛을 보고서 성공 여부를 판단하려면 평소에 먹어봐서 맛을 잘 기억하고 있고, 좋은 맛이 어떤 것인지 판별할 수 있는 익숙한 빵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대실패였다. 냉장고에서 저온 발효를 시키려고 했는데 이틀이 지나도 반죽은 전혀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 하룻밤 꺼내서 실온에 두고 다시 반죽을 하고, 따뜻하게 덥힌 오븐에서 전원을 끄고 숙성을 시켜도 여전히 부풀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한 봉지 더 남아 있던 인스턴트 이스트의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역시나. 이미 1년 전에 유통기한이 지나 있었다. 어쨌든 이스트는 살아있어야 하는 미생물이니까 유통기한이 길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이미 1년 전에 지났다면 아무리 인스턴트로 쓰이기 위해 건조된 상태였다 해도 이미 수명이 다 했으리라. 아깝지만 반죽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너무 슬펐다. ㅠㅠ

 

그래서 두 번째는 베이킹 수업 때 본 생효모를 사다 해보기로 했다. 냉장유통하는 생효모는 아마도 가장 "살아있는" 상태겠지. 처음 갔던 슈퍼에는 아무리 찾아도 생효모를 안 팔아서 (알디라서 딱히 물어볼 직원도 없었다.) 다시 차를 몰아 레베까지 갔다. 내가 퇴근 후 하룻 저녁에 두 개의 슈퍼마켓을 간다는 것은 정말 열의가 넘칠 때나 하는 짓이다. 난 꼭 성공해서 식빵을 먹고야 말겠다는 열의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레베에서 냉장고를 샅샅이 뒤진 결과 구석에 숨어있던 생효모를 찾았고(어떻게 생겼는지 미리 알고 있어서 어찌나 다행이었던지!), 집에 와서 당장 반죽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비건 레시피를 참조했다. 지난번의 실패로 인해 자신감이 줄어든 상태였고, 따라서 여러 종류의 재료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실패의 경우도 계산했어야 했다. 하지만 혹시 성공할지도 모르니까 들뜬 마음으로 집에 있던 시큼해서 먹기 싫은 블루베리들을 설탕 넣고 졸여서 쨈도 만들었다. 냉장고에 반죽과 쨈을 넣어두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구워 볼 기대에 가득 차서.

 

잘 부풀은 반죽!

결과는 보시다시피 성공적이었다. 사실은 인스턴트 이스트 대신에 생이스트를 쓸 때 양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내 멋대로 (...) 원래 넣어야 하는 양보다 약간 초과해서 넣었다. 약간 많지 않을까 생각은 했지만, 덜 부푸는 것 보다는 더 부푸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전혀 부풀지 않은 실패작 때문에 약간의 트라우마가 생겨서 판단력에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도 냉장고에서 하룻밤 재운 반죽은 만족스러운 크기로 부풀어 있었다. 10시간 정도 발효를 하라고 했지만 이스트를 많이 넣은 것이 좀 걱정되어서 8시간 만에 꺼냈다. 살짝 막걸리 냄새가 났고, 반죽을 찔러봤을 때 가스가 푸슉하고 나오고 살짝 반죽이 꺼졌다. 이 것은 과발효된 증거라고 어떤 블로그를 보고 배웠다. 하지만 반죽이 푹 꺼지는 것도 아니었고, 막걸리 냄새도 아주 살짝 났으니까 높은 온도에서 30분 정도 구우면 발효할 때 나온 알코올은 다 날아갈 거라 생각했다. 말캉말캉 부푼 반죽은 성형하기도 되게 쉬웠고, 가지고 있던 파운드케이크 틀에 넣어서 덥혀진 오븐 안에서 15분 정도 2차 발효 후 구워보았다.

 

완성된 식빵에 블루베리 쨈을 발라서 시식중인 사진. 맛있었다.

식빵은 굉장히 성공적으로 구워졌다. 부풀은 정도도 너무 좋았고, 죽죽 찢어지는 것이 내가 바라던 딱 그대로의 형태, 질감, 촉감, 향기를 가지고 있었다. 비건식빵 레시피였지만 촉촉함, 질감 같은 건 내 이데아 속 식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다만 맛은 버터 대신에 올리브유를 써서 그런지 약간 이탈리아 빵 치아바타 같은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 풍미도 좋고 맛있는 식빵이 만들어졌다. 바로 잘라서 서너 쪽을 먹어 치우고, 나머지는 잘라서 얼려놨다. 생각보다 너무 성공적이라서 아껴 먹으려고. 다시 구우면 되긴 하지만 이게 은근히 노동력이 많이 들고, 어쨌든 구우려면 주말이 아닌 이상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해서 그 점도 힘들다. 정말이지 촉촉보들한 식빵을 쨈 발라서 먹어야겠다는 열망이 있었으니 했지, 근 과거의 나로선 상상도 못 할 나의 모습이었다. 땅콩버터도 발라먹고 싶어서 어제는 굳이 나가서(!!) 땅콩버터도 사 왔다. 구워서 바로 얼린 빵을 냉동실에서 꺼내서 실온에 해동 후 토스트기에 구워 먹으면 그 또한 어마어마하게 훌륭한 맛을 낸다. 오늘은 일요일 아침이니가 사치스러운 기분을 내며 커피를 내려서 토스트 한 빵에 땅콩버터랑 쨈을 발라 먹었다.

 

토스트 두 쪽과 커피 한 잔으로 어마어마한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은 독일 시골에서 외노자 생활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 언젠가 더 나이가 들어서 지금과 다른 삶을 살 때 이 시기를 하나의 챕터로 묶어서 제목을 '결핍'이라 지을 것이다. 때마침 세계의 트렌드도 미니멀리즘이니까 아주 컨셉츄얼한 한 챕터가 될 것이다.

 

아 그리고 식빵틀을 하나 사고 싶었는데, 내 쪼그만 파운드케이크 틀이 은근 식빵 굽기에 괜찮아서 그냥 안사고, 대신 돈을 모아서 커피 그라인더를 바꾸고 싶다. 하나의 취미는 또 다른 취미를 부른다. 투비컨티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