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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맞게 살고 있는걸까

내 집 벽에는 똑같은 문구의 큰 액자가 두 개 걸려있다.

 

거실 풍경 - Don't work for assholes. Don't work with assholes.

어제 몸이 안좋아서 재택 근무를 하면서 눈 앞에 벽을 바라보다가 '아뿔싸, 맞다, 나 이렇게 살지 않으려고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asshole이 누구인지는 사람이나 상황마다 다를 수 있다. 스스로를 초라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정당화를 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저 문구가 찍힌 작품을 살 때의 내가 너무 자존심 상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저게 어렵다는걸 알고 있기 때문에 가훈으로 삼기로 했고, 그래서 더더욱 지킬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현재 내가 asshole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대게 아래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 살던 방식을 바꾸기 싫어한다.
  • 살던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 싫고 좋은 것에 대한 이유가 표면적으로만 있고, 핵심에 다다르지 못한다.
  • 그래서 하는 말에 반복이 많고 핵심이 결여된 경우가 아주 많다.
  • 타협점을 좋아한다.
  • 어떤 액션을 취하는 원인이 본인 안에 있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말한다.
  •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티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꼭 들킨다.
  • 솔직하면 손해본다고 생각한다.
  • 어떤 기준에서든 사람을 차별한다.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 나를 열받게 하는 사람들을 묘사한 것 같지만 (맞다) 사실 내가 싫어하고 말 섞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다 저 특징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이고 서로 보듬어 주면서, 회사도, 커뮤니티도, 사회도, 지구도 다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걸 부추기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어쩌면 결산기의 숫자로 모든 것을 평가받는 자본주의의 맹점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 반대로 네오리버럴리즘 같은게 말이 안되는 이유가 인간의 이러한 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내가 싫어하는 저런 특징이 두드러지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법을 쓰게 만드는 사람들이 되게 증오스럽다. 왜냐하면 회사에서의 일례로, 전화 회의 중에 '아 그냥 얘가 듣고 싶은 입에 발린 소리나 하고 끊자' 이 생각이 정말로 계속 들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assholes를 위해 일하고 있지는 않다고 믿고 싶지만, assholes와 같이 일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서 참담하다.

 

엊그제 친한 동료가 나를 정말 진심으로 위로해 주면서, 어쩌면 가장 최전선에서 개념 없는 상대 집단의 안하무인을 견뎌내고 있는 스스로의 포지션을 한탄했다. 진심으로 고마웠고, 또 큰 도움이 될 수 없어서 씁쓸했다. 예전에 그 동료에게 너는 내가 만나본 가장 뛰어난 프로덕트 오너이고, 같이 일하는 것이 정말 즐거우며, 이 회사에서 내가 같이 일하는 그 누구보다 영민하게 일을 잘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 보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동료도 나에게 네 방법은 충분히 뒷받침 되는 이유가 납득이 가고, 따라서 그들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해서 내가 잘못한 것이 전혀 아니며, 너가 이 팀에 있어서 나는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말해줬다. 진짜 이 동료 때문에 내가 이직을 조금 망설이게 되어서 고마워야 할 지 원망해야 할 지 모르겠다.

 

호불호가 강한 사람인 나는 사실 어디에 가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만 누군가를 미워하는 경우는 드문데, 왜냐하면 미운 마음이 들지 않도록 미리미리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를 사전에 차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혹 회사에서는 그게 어렵기도 하다.

 

특히 어려운 점은 팀이 너무 온갖 대륙으로 찢어져 있어서 동료간에 유대관계가 거의 없고, 나처럼 말을 안그래도 다이렉트하게 하는 사람은 정말 미운털 박히기 딱 쉽다는거다. 예외가 있는데, 디벨로퍼 팀과는 이런 분쟁이 없다. 다들 할 만만 하고, 해야 할 말만 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트위터 같은데서 독일 욕을 종종 하지만, 나는 내 독일 동료들은 참 좋다. 일단 다 여자들이고, 제각기 약간 덕후 기질이 있어서 말도 되게 잘 통한다. 가끔 저래야 하나 싶을만큼 쓸데 없는 것을 짚고 넘어가는 성향은 좀 전형적인 독일인 같기도 하지만 그 점은 참을 수 있다. 적어도 머리로는 왜 저래야 하는지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앞 뒤 자르고 마음에 안드는 것만 지적 할 때도 있는데, 처음에는 좀 의기소침했지만 오히려 정직해서 좋다. 하지만 같은 조직 안에서 같은 팀이랍시고 일하면서 사람을 은근히 무시하고, 입으로 뱉는 말과 그 말속의 뼈의 완전 딴판인 미국 동료들은 정말 어렵다. 그들도 사실 대면해서 만나면 대부분 좋은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좀 더 스트레스가 많고, 모두가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통에 스스로도 그런 텅 빈 말을 해야만 하며, 그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누굴 위해 일하고 있는지, 이번 분기의 목표가 무엇인지, 우리 퍼포먼스가 뭘 의미하는지 등은 단체 최면이라도 걸린 듯 까먹고 있는 분위기여서 놀라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