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서울 외에서 산 지 벌써 7년 이상, 십년전에 토론토에서 산 것까지 합하면 9년 이상을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았다. 사실 워낙에 큰 도시라서 내가 아는 곳은 별로 안된다. 고향인 서대문구 일대, 입시미술과 취미 생활을 위해 뻔질나게 찾던 홍대를 중심으로 한 마포구 일대, 약속장소로 선호하던 종로구, 대학교를 다녔던 건대주변 광진구, 그리고 회사생활 하면서 주로 떠돌던 강남구와 서초구. 이 외의 19개 자치구는 몇 번 가 본 적 조차 없다.
독일에서 살면서 세 번 째 한국을 방문하는 것인데, 늘 한겨울에 방학일 때만 가다가 이번에는 날씨 좋은 가을에 가서 그런지 유독 여행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번에 구지 짧은 일정으로 방문한 이유는 아픈 엄마와 고생이 많으신 아빠와 남동생을 보러였기 때문에 맘 편히 여행자 행색을 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 있어 여행을 한다는 것은 낮동안의 일정을 끝내고서 돌아와 고립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호텔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빠 집에서도, 시댁에서도 내 집이나 호텔만큼 편하게 쉴 수는 없었다. 가족이란 관계의 타인의 집이어서도 그렇고, 내가 장녀이자 며느리이기 때문도 있다.
하지만 약속이나 볼일이 있어서 외출하는 날에는 쭉 기분이 좋았다. 어디에 가든지 근방에 수많은 상점, 맛있는 식당, 고급스러운 카페가 있고, 대중교통은 어디로든지 편리하게 나를 실어다 주었다. 돈을 쓸 때 늘 친절하고 친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고, 화창한 날씨 덕분에 눈을 두는 곳마다 풍경이 멋있어 보였다. 동생이 쉬는 날 함께 뒷산에서 등산을 하고, 시설이 엄청 좋은 주민센터에서 커피 한 잔 하며 북카페에서 쉬다 온 것은 정말 서울예찬을 하게 만드는 경험이었다. 친구들과 멋있는 카페에 가거나 맛집을 찾아가거나 한강 공원에서 산책과 수다를 함께하는 등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다 왔다.
반면 서울에 있는 내내 엄마가 상태가 많이 안좋으시고, 이제 뼈밖에 안남았을 만큼 살도 많이 빠지셔서 마음이 아프고 착잡했다. 아빠는 긴 간병 생활에 지칠대로 지치신 듯 보였다. 남동생 또한 철없이 살다가 닥친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 여전히 힘든 모양이었다. 아빠와 남동생이 거동을 전혀 못하시는 엄마를 보살피며 꾸려나가는 살림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열악했다. 한참 밀린 청소나 빨래를 나서서 도왔지만 내 집도 아니고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적으로 가사나 병간호를 해 주는 사람이 꼭 필요한데, 경제적인 여건이 안되어 그런 아이디어를 입 밖에 내는 것이 죄스러웠다. 여지없이 빈곤의 나락으로 빠진 삶을 내 두눈으로 보면서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내가 결혼을 하면서 주거의 독립을 이룬 것은 벌써 7년전이고, 사실 대학교에 입학해서 부터 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 그리고 아르바이트 등으로 부모님의 지원을 거의 안받았으니까 경제적으로 독립한지는 훨씬 더 오래되었다. 그 때부터 나에게 있어 독립은 자유를 의미했고, 그 자유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를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었다. 경제적인 독립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늘 쪼들리게 사는 것이 아주 피곤했지만, 자유를 위해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 할 수 있었다. 나는 늘 한국이 아닌 곳에서 살고 싶었는데 더 큰 자유를 원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평생동안 맺어온 관계들에 얽혀 자유롭기가 어려웠다. 특히 부모님과의 관계는 나에게 있어 영향력이 매우 크고, 그만큼 내 자유를 가장 크게 억압하는 것도 사실이다.
엄마는 이번에는 그런 말을 안하셔서 참 감사했지만, 쭉 나보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자신을 간호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셨다. 내가 하는 일, 미래, 커리어는 다 포기하더라도 딸인 내가 본인의 안위를 위해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고 계셨다. 이번에 그런 말씀을 안 하신 것은 아마 그 반대의 마음, 즉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으셔서 일 것이다. 나는 원망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죄책감을 느껴야만 할 것 같고, 아픈 엄마의 기대를 외면해야 하기에 마음에 큰 부담이 된다. 병에 걸리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가장 힘든 본인을 포함해서 가까운 사람들이 큰 고통을 받아야 한다. 젊어서도 잔병치레가 많으셨던 엄마는 내가 의사나 적어도 간호사가 되기를 바라셨는데 나는 그 바람을 이뤄 드릴 생각이 없었다. 이것은 불효일까. 작년과 달리 아빠가 힘든 내색을 많이 하셨다. 허리도 많이 아프신 것 같았다. 두 분이 다 아프시면 안되는데, 하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도 불효일까. 나는 이기적인 편일까.
아침에 공항버스 타는 나를 배웅해 주면서 아빠가 말했다. 버스 타는 순간부터 집 일은 생각하지 말고 너 독일에서 잘 사는 것만 집중해. 이 말에서 사랑이 느껴져서 버스안에서 많이 울었다.
독일에 돌아와서는 전혀 다른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를 타고 공항에서 집까지 안락하게 왔고, 남편이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게 청소 해 둔 우리집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고양이들이 금새 나를 알아보고 반겨줬고, 편안하고 행복한 감정이 비로소 들었다. 나는 어느새 내 노력으로, 내 힘으로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들로 안락한 일상을 꾸리고서, 이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이 마음을 달래면 좋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