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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OOP in Europe

까까가 찍어준 '이제야 좀 놀러온 사람 같은' 사진 - 베르사유 궁전

친구들이 다녀갔다. 일주일이 채 안되는 굉장히 타이트한 일정이었지만 제법 알차게 넷이서 독일 중서부와 파리를 돌아다녔다. 독일에서는 내가 사는 곳, 그리고 근처의 관광 도시 하이델베르크, 숙소가 있던 만하임, 또 끝없는 와인밭이 내려다 보이는 요하니스베르그 성을 둘러 보았다. 파리에서는 둘둘씩 또는 각자 찢어져서 가고 싶은 곳을 보고, 저녁에 만나서 식사를 같이하는 여정을 했는데 제법 괜찮았다. 8월 초 한창 휴가철의 파리는 지난주의 무시무시한 더위가 한 풀 꺾여 여행하기 더없이 훌륭한 날씨로 반겨줬고, 그래서 베르사유 같은 유명 관광지에는 사람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그래도 처음 방문하는 도시에 오랜 친구들과 같이 갈 수 있어서 좋았다. 비록 짧았지만, 너무나 멋진 거리에 넋을 잃고 걸어다녔고, 유명한 에펠탑이나 궁전, 모네의 그림 등을 실제로 보니 내 상상보다 더 멋졌다. 파리는 반드시 다시 가고 싶어지는 그런 곳으로 기억에 남았다.

 

까까가 찍은 하이델베르크 거리를 서성이는 우리들

직장인들로써 휴가 전은 유독 바쁠 수 밖에 없다. 잠시 공백을 위해 처리 할 일을 바쁘게 처리해 놓고 휴가를 시작한, 그렇게 지친 넷이 만났다. 게다가 한국에서 온 셋은 하노이를 경유해서 길고 긴 비행 뒤에 만난거라 더더욱 지쳐있었다. 내가 이 곳에 산다는 이유로 사실 인생에 꼭 필요 없을 1주짜리 유럽행을 소중한 휴가를 써서 와 줘서 너무나 고마웠다. 이 때가 초 성수기라서 각자 여행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들었다. 최대한 잘 해주고 싶었는데, 내가 부족해서 아쉬움이 좀 남는다. 어쨌든 나는 덕분에 여행 내내 정말 즐거웠다. 한국말로 실컷 수다를 떠는 것도 좋았다. 마인츠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렌터카에서 다같이 열창한 90-00 가요와 김연자(?) 메들리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즐거운 기억일 것 같다. 갈증이 마구 해소되는 느낌이었어.

 

임선생이 찍은 매우 흐뭇하게 파리 첫 메뉴를 고르는 나

파리에서는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다녔다. 독일에 살다보니 '맛'에 대한 결핍이 심했다. 내가 직접 요리하지 않는 한 늘 어딘지 부족한 느낌의 식사를 하게 되고, 이제는 어느정도 포기하고 내려놓고 살게 되었다. 그래서 파리에서의 식사를 더더욱 기대했었나 보다. 그 기대에 완전히 부응했냐고 하면, 내 환상이 더 컸다고 말하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더 훌륭한 식사를 매번 하고 다녔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로 먹을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고, 먹고 싶었던 것들을 먹었기 때문이다. 허름한 크레페리에서 (라따뚜이 같은 조그만 생쥐도 돌아다니던 -_-) 인도인 아저씨가 만들어준 갈레뜨조차 되게 맛있게 먹었다. 심지어 파리에서 먹은 것은 감자칩조차 맛있었다. 쌀국수는 아무데나 들어가서 먹었는데도 기본 이상을 했고, 훌륭한 점을 여러개 꼽을 수 있었다. 결핍이 없고, 맛의 소중함을 몰랐다면 미처 느낄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임선생이 찍은 라빠예뜨 백화점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파리 시내 전경
에펠탑 반짝이쇼를 보는(찍는) 친구들

유명한 관광지는 총 대충 세 곳 정도를 보았다. 첫날에 간 라빠예뜨 백화점이 그 중 하나다. 친구 따라 가서 생활용품관을 재미있게 구경했다. 중간에 힘들어서 여성복건물 6층 식당가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으며 정면의 에펠뷰를 바라보았다. 잠시 쉬어가기 좋은 스팟이었다. 저녁을 먹고는 친구가 선물로 예약해준 유람선을 타러 갔다. 한국에서 예약해서 올 수 있어서 신기했는데, 역시나 한국사람과 중국사람이 승객의 대부분이었다. 구지 여기까지 관광 온 친구들로썬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는지 애들이 투덜댔다. 난 어느새 아시아 사람에게 둘러쌓여 있으면 안심이 되는 지경이 된 것 같아 그 차이가 재밌었다. 그런데 막 어떤 사람이 한국노래 되게 이상한 것을 스피커폰으로 틀어놓고 좀 민폐였다. 공공장소에서 노래가 듣고 싶은데 이어폰이 없으면 그냥 머리속으로 부릅시다. 세느강가에서 술마시던 백남 둘이 엉덩이까는 조롱을 '어김없이' 했다. 이 조차 너무나 클리셰라서 그냥 아무 감정도 없이 지나쳤다. 유람선의 하이라이트는 에펠탑 반짝이쇼였다. 에펠탑이 아주 크게 보이는 곳에 11시 정각에 도착했고, 반짝이 불빛 쇼를 볼 수 있었다. 정말 크고 멋지고 예뻤다. 모형이나 그림, 사진으로 보던 에펠탑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이 쯤에서 실물의 위대함을 깨달았나보다.

 

화려함과 인파의 끝을 보여 준 베르사이유 궁전

다음날에는 까까가 줄곧 가고싶어 했지만, 시내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고, 빡센 일정 때문에 몸이 피곤해서 망설였던 베르사이유 궁전에 같이 가기로 결심했다. 에펠탑을 통해 그동안 업신여겼던 유명관광지가 다 유명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음을 깨달은 덕분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가고 싶어 할 여행 파트너가 다시는 없을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이번이 마지막으로 베르사이유 궁전을 가 볼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상대로 꽤 멀었고, 이미 지친 상태에서 도착한 뒤 어마어마한 관광버스 숫자에 깜짝 놀랐다. 티켓을 사는 줄은 다행히 길지 않았다. 요즘엔 다들 온라인으로 사서 오나보다. 티켓을 사고, 악명높은 입장줄을 길게 기다려서 입장했다. 파리의 관광지는 대부분 세큐리티 문을 통과하며 짐을 스캔한다. 테러 이후로 도입된 시스템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조금 더 지체를 예상해야 한다. 베르사이유 궁전은 명성대로 토나올 만큼 화려했다. 이 정도 수준의 화려함을, 이 정도 수준의 스케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자체조차 굉장히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이 곳에서 실제로 살았던 그 시대의 사람들의 사치는 감히 상상도 잘 되지 않는다. 이 곳에서 파는 기념품들도 꽤 사치스럽고 멋있었다. 기념품 샵 어디를 가나 있는 그런 것을 팔지 않아서 좋았다. 베르사유의 정원은 정말 너무 말도 안되게 커서, 이미 지쳐버린 우리는 유명한 뒷뜰 스팟(?)마다 세워주는 기차를 타고 한바퀴 빙 도는 것으로 만족하고서 턴을 마무리 하기로 했다. 그래도 그걸 타고 좀 쉰 덕분에 아침부터 햇빛 아래에서 피곤하게 돌아다닌 탓에 생긴 깨질듯한 두통이 조금 잦아들었다. 크레페를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누워 쉬다가 저녁으로 내가 노래를 부르던 파리의 쌀국수를 먹고 하루를 마무리 했다. 사실 저녁 먹고나서 쵠을 따라서 큰 슈퍼마켓에 가려고 찾아갔는데, 안타깝게도 폐업한 상태였다. 이번에 특히 쵠이 가고 싶어 한 곳들이 휴가철이라 휴가 간 가게도 많고, 리노베이션 공사중, 폐업... 이래저래 헛걸음 하는 일이 많은 여행이었다.

 

안젤리나에서 먹은 아침. 그리고 달디 단 몽블랑.

셋째날이자 마지막날인 다음날에는 일찍부터 안젤리나에 가서 아침을 먹으려고 했지만 예상보다 한시간 늦게 일어나 버렸다. 그래도 가서 맛있는 프렌치 어니언스프와, 키시, 그리고 디저트를 먹었다. 다 프랑스에 있을 때 오리지널(?)을 먹어봐야지 결심한 것들이라 좋았다. 감상은 내가 원하는 정도의 맛을 다 구현해 주고 있었고, 재료를 아낌없이 써서 좋았다. 독일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것들이지요. 바로 앞의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다같이 관람 후 점심깨에 찢어졌다가 다시 호텔에서 만나 독일가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까까와 나는 오르세 미술관을 포기하고 쵠이 가고싶어 했지만 시간상 포기하게 되면서 알려준 에르메스 본점에 가 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중국 식당에 들러 점심 코스로 만족스럽게 배도 채웠다. 역시나 본점 에르메스는 되게 멋지고 고급스러웠다. 건물 내부에 코쿤처럼 목조 장식물로 구역을 나눠놓고, 그 안에서 각기 다른 종류의 아이템을 전시해 뒀다. 천정 근처에는 로고에서 본 듯한 말 탄 사람의 석상이 멋지게 매달려 있었다. 스카프 같은 제품들이 너무나 멋졌다. 앞 뒷면의 직조 방식이 다르다거나, 어디서 구경도 못 해본 색조합으로 표현된 패턴들이 정말 말그대로 비싸 보였고, 비쌌다. 좋은 구경 한 셈 치고(<???) 나와서 걷다가 커피 한잔 하며 화장실 들러 방광도 비우고, 걷고 걸어서 호텔에 도착. 더이상 걸을 힘이 없어서 우버를 불러 타고 기차역으로 갔고, 시간이 촉박해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무사히 ICE를 타고 독일로 돌아왔다. 그렇게 애증에서 증의 비율이 크게 느껴지는 독일이지만 만하임 역에 도착하니 집에 돌아 온 기분이 들었다.

 

쵠이 찍은 비오는 우리동네 골목길

웁답게 다음날 비행기 타고 돌아가는 그 때까지 자잘한 에피소드는 끊이지 않았고, 일일이 일기에 쓸 수 없어서 아쉽지만 기억이 좀 휘발되고, 아름다운 것들 위주로 기억의 파편들이 가라앉을 1달 반쯤 뒤에는 이 친구들과 다시 서울이나 어딘가에서 만나 수다 떨 수 있을 것이다. 그 때까지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정말 빡세고 즐거운 휴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