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고 사냐는 질문을 살면서 몇 번이나 듣게 되는걸까?
묻는 사람은 어떤 대답을 기대하고 '잘 지내' 또는 '어떻게 지내'가 아닌 '뭐 하고 지내'란 질문을 하게 된 것일까?
영어로는 꽤 편리한 표현을 하나 배워서 잘 써먹고 있다. 'Not much'
그런데 한국어로는 '뭐 별로' '딱히' 이런 대답을 하기가 약간 망설여진다. 조금 건방진 느낌이라서. 건방져도 상관없는 상대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은 여태까지 연락이 끊기지 않고 유지되는 사람들은 아무리 오랜만에 대화를 하게 되어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해도 막 대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 뿐이다.
그래서 매일 반복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1~4주 단위로 반복하는 일반화 된 나의 일과를 말하고는 한다. 당연히 생존을 위해 꼭 해야 할 식사나 나 자는 것 같은 것은 빼고.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만 이야기 하려고 한다. 막상 말하고 나면 자주 써먹는 저 영어 표현이 기가막힌 함축을 한 좋은 표현임을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뭐 별로 딱히 특별 할 것 없다.
어쩌면 물어본 상대는 이런걸 듣고 싶은게 전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질문을 다르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질문한 상대가 누구든지간에 듣게 될 대답의 긴 버젼은 다음과 같다.
나는 아침에 힘겹게 일어나는 편이다. 예를들어 잠을 7시에 깼으면 8시는 넘어야 침대에서 기어 나올 수 있다. 한시간 동안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놀다가 선잠에 들었다가 깨고는 한다. 8시에 나와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커피를 바로 마신다.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확인한다. 난 출근 시간이 딱 정해져 있지는 않고 탄력적으로 근무하므로 아침에 메일을 확인하며 대충 오늘 할 일의 분량을 파악한다. 바로 답장 해서 끝낼 수 있는 일은 그 자리에서 답변하고 끝내기도 한다. 그리고 10시쯤 사무실에 도착하도록 준비하고 나간다. 집에서 사무실 문앞까지 한시간 정도 걸리고 그 중 45-50분은 운전을 한다. 그래서 요즘 팟캐스트를 많이 듣는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씻고 옷을 갈아 입으면 8시가 다 된다. 저녁먹고 치우고 나면 딱히 뭔가 할 시간은 없다. 해가 질 때쯤 발코니에 있는 화분들에 물을 주고, 고양이들을 챙겨준다. 무선 청소기로 눈에 보이는 곳만 대충 청소하거나 설거지 정도는 그 때 그 때 해둔다. 그러고 나서 유투브를 보거나 트위터를 들여다 보다 보면 금새 잘 시간이 된다. 잠이 올 때까지 한국어 책을 하루에 25페이지 정도씩 읽는다. 솔직히 평일에는 영화 한 편 볼 에너지도 없다. 주말에는 미뤄둔 빨래, 장보기, 청소 등 집안일을 몰아서 한다. 따라서 파티나 약속이라도 있는 날이면 되게 바쁘다. 휴가는 한 두달에 한 번씩 짧게는 1박 2일, 길게는 2주정도 간다. 더 자주 가고싶지만 일상이 무너지는 것도 싫어서 이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한가한 주말에는 자기계발을 위한 공부도 조금씩 한다. 운동은 주 3회, 바쁠 땐 2회, 한번에 30분씩만 한다. 남편과 나의 취미 중 하나인 요리는 둘이 번갈아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덕분에 먹을 걱정은 별로 안한다.
사실 사는 곳만 독일이고 특별 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이정도로 심플하고 내 체력에 맞는 생활은 한국에 살 때는 조금 어려웠던 것 같다. 약속이 많았고,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것에 만족한다. 내가 있는 곳에 대해 당연히 불만도 많지만 집 안에서 만큼은 마음 편하고 좋다. 내일만 일하면 일주일간 휴가다. 휴가가 많고, 쓸 때 눈치 덜 보는 점은 정말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