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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하기 싫은 것을 안하는 것

최근들어 여행이란 것이 전처럼 재미있지 않아진 것 같아서 쓸쓸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 이유를 깨달았다. 왜냐하면 이번 파리 여행을 앞두고는 전과 달리 기대와 희망이 넘치기 때문이다. 기대감에 가득차서 심지어 영화 비포선셋도 다시 봤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다시 볼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또 뭐가 있었더라, 파리를 배경으로 한 내가 좋아했던 영화.

 

아무튼 그동안의 여행에서 충족감이 적었던 이유를 비포선셋 덕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셀린이 자기가 아주 어릴 때 쓴 일기를 읽다가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생각과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걸 알았다며 사람의 코어는 바뀌지 않음을 토로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고보니 나도 그렇다. 나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일기를 쓰는 사람이라 그 증거조차 가지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내가 하기 싫은 것을 안 할 때 행복한 사람이다. 아니, 내가 불행한 것을 안 할 때 행복하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할 때 불행함을 느낀다. 결국 나는 나에게 네거티브한 것을 거절 할 줄 알아야 행복해 질 수 있다.

 

독일에 와서 새로 갖게 된 인간관계 덕에 오랜 시간 한국에서 고군분투하며 쌓아둔 '나다운 것'을 잠깐 창고방에 치워 두듯이 잊고 살았다. 좋은 사람 행세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었을까? 거절을 잘 못하며 지냈다. 행복하지 않았던 지난 여행들을 돌이켜 보니 내가 원해서 간 곳은 별로 없었다. 마지막으로 여행지에서 행복을 느꼈던 건 제작년에 혼자 계획하고 혼자 떠났던 북유럽 도시들이었다. 그 다음 좋았던 곳들은 역시 면조와 둘만 갔던 독일, 오스트리아 등 가까운 여행지. 시간과 비용의 한계로 인해 많은 타협점이 있었지만, 짧아서 부담이 적었고 둘만 움직이면 자유도가 높아서 그나마 여러 부분에서 좋은 점을 더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별로였던 것은 (막상 가서는 즐겁게 다녔지만) 역시 학교 동기들과 총 여섯명이서 단체로 간 크로아티아였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여행지에 대해서 내리는 모든 선택이 타협의 결과였다. 좋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파리도 친구들과 간다. 다만 한국에서부터 오래 알고 지낸 정말 좋아하는 여자 친구 넷이서 같이 간다. 각자에 대한 이해도도 높고, 개인간의 거리도 잘 이해하며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으로 유럽에서 여럿이 움직이는 여행인데도 기대가 많이 된다.

 

반면 면조는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행복하다고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하는 정도는 견딜 수 있다고 한다. 나랑은 아무래도 다른 성향이다. 그래서 나는 면조가 하고 싶은 것을 같이 해야 할 때 불행하다. 좋을 때도 없지는 않지만, 그건 내 안에서 '생각보다 괜찮네'라는 판단이 나왔을 경우다. 생각과 똑같이 별로라는 결론이 나올 경우에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이 불행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적어도 본인이 보고 싶은 영화를 보거나 할 때 구지 나랑 같이 봐야 한다는 희망을 갖지 않는다. 정말 다행인 일이다. 요즘에는 집에서 각자 랩탑이나 스마트폰으로 놀며 주로 다른 공간에 있다. 그걸 받아들인 후로 같이 사는 것이 더 편해진 느낌이다.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에 제안에 대해 '아 하기 싫은데'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 거절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연습을 미리미리 해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