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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을 다 읽었다. 2000년에 출간되었다고 하니까 벌써 20년이 가까이 된 작품이다. 되게 잘 짜여진 티비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배경, 주인공들, 그리고 다루는 메시지가 굉장히 시공간 적 감각이 살아있는 주제였다. 냉정하다 못해 구질구질한 자본주의와 여성의 기구한 삶(!!). 20년 전과 지금은 어떻게 다를까 비교도 하며 읽으니 재미있었다. 30대 초반까지 여성으로 한국에서 산 내가 느끼기에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다만 최근 몇 년간은 적어도 여자들 사이에서 의식의 진보는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대놓고 부조리를 지적하지는 않아도, 비혼을 결심하거나 자립의 길을 모색하며 커리어 관리를 하는 사람이 좀 더 많아진 것 같다. 그래도 역시 대놓고 이 불평등을 이야기 하기에는 억압이 많다고 느껴진다.


화자는 40대 남자 의사인데 되게 부조리한 인물이지만 자신의 비도덕함을 인정하고 있고, 자칭 페미니스트다. 사실 젠더 문제는 이 이야기의 큰 줄기로 볼 수는 없다. 보다 중요한 주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명의 가치와 돈의 많고 적음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웃지 못할 영향력 뭐 이런게 느껴진다. 화자가 기구한 삶을 사는 여동생의 삶에 대해 자신이 어느정도 관여해야 할 지에 대해 늘 고민하지만, 절반의 마음은 출가외인에 대해 무시하고 싶은 욕망이다. 게다가 나중에 여동생이 구원받는 방식도 결국 성공한 남자형제를 통해서다. 답답한 현실의 반영인지, 이 소설의 페미니즘적 한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좋았던 점은 다양한 여성 등장인물과 제법 세세한 각 인물의 묘사였다. 화자의 아내, 애인,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여동생의 시어머니, 시할머니. 화자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제외하고는 혈연관계도 뭣도 없이 만나서 가족이 된 여자들의 입장차이, 그 들이 느끼는 억울함, 그리고 그 것을 돌파하고자 하는 방식 등의 묘사가 설득력있게 되어 있었다. 나외 내 친구들 수준의 (여성의 삶에 대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한 명 나오는데 화자의 애인으로 나오는 현금이다. 하지만 설정 자체가 부자집안 장남인 남편과 이혼하며 얻은 막대한 위자료가 그 여자의 자유의 기반이라서, 그 부분이 좀 아쉽다. 하지만 역시 당시의 상황과, 당시 대부분의 보통사람의 사고의 지평이 거기까지 였을 것 같다.


그나저나 잠이 안와서 새벽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자고, 그러다보니 또 늦잠을 지나치게 자버리고, 밤이 되면 다시 잠이 안오는 악순환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이걸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까.